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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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정월 그믐날 술시, 고비키초의 극장 뒤편에서 빨간 후리소데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이 도박꾼에게 긴 칼을 겨누고 외친다.

“나는 이노 세이자에몬의 아들 기쿠노스케. 그대 사쿠베에는 내 아버지의 원수. 여기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쿠노스케는 사쿠베에의 머리를 잘라 복수를 완성하고 그 일은 “고비키초의 복수‘라 불리며 회자된다.

사건이 벌어지고 2년 뒤 기쿠노스케의 친구라는 무사가 고비키초를 찾아 그 당시 목격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쿠노스케의 친구는 사건에 대한 질문을 물론 목격자들의 인생 이야기를 청해 듣기 시작한다.

첫 번째 만난 목격자인 잇파치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유녀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천한 일을 전전하다 문전 게이샤가 되었다고 한다.
배우들의 무술 연기를 지도하는 요사부로, 연극의 의상을 담당하는 호타루, 아들을 병으로 잃고 연극의 소도구를 만들며 사는 규조와 오요네 부부, 각본 담당 긴지씨, 만나는 다섯 명의 목격자 모두 사연을 간직한 체 극장 마을에 살고 있다.

1935년 상반기부터 1년에 2회씩 대중문학부문의 신인작가에게 주어지는 나오키상을 2023년에 수상한 작품이니 재미는 보장됐다 할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라고 하지만 일본의 에도 시대는 익숙하지 않은 배경임에 틀림없어 읽기에 저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것이 괜한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소설의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며 사건의 목격담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독자는 청자가 되어 자연스럽게 따라 가다보면 애도 시대의 ‘극장 마을’의 이웃들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복수라는 무서운 사건의 목격자들의 입을 통해 서서히 생각지도 못한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처음부터 누가 왜 복수를 했는지를 알려주는 소설은 복수 이면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람들에게 악처라 불리는 거리에 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이득도 없지만 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삶과 죽음은 물론 인생 자체가 큰 연극임을 배우게 된다.
각박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까닭에 이웃 나라의 에도 시대의 이야기에 낭만은 물론 서로 돕는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언제 알아차리든 이 소설의 반전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띠지의 문구만큼 이 소설을 제대로 정의내릴 문장은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름다운 외형을 갖은 책만큼이나 어떤 곳에서 살든지 인간미를 잃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시대물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독자라도 한 번 책을 잡게 되면 쉬 놓치 못 할거라고 장담해 본다.




<본 도서는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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