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표지와 그에 어울리는 띠지의 문구가 강력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온몸이 토막 난 채 불에 탄 열일곱 살 소녀, 사르다 가족의 셋째 딸 ‘아나‘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공터에서 발견된 후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30년이 흐른다.그 사건으로 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둘째인 리아는 고국인 아르헨티나를 떠나 아무런 연고가 없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곳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더는 신을 믿지 않는 리아는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하는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는다.어느 날 첫째인 언니 카르멘이 서점으로 찾아오고 언니가 30년 전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던 훌리안과 결혼해 아들 마테오를 낳았고 소식이 끊긴 아들 마테오를 찾으러 왔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30년 동안 여전히 막내딸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사실 뒤표지와 띠지의 글을 읽은 뒤라 중반쯤부터 범인의 정체를 짐작했지만, 이야기의 힘이 빠지거나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는다.소설은 둘째 딸인 리아의 입을 통해 시작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입장에서 서술해 나간다.특히 ”아나“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지만 선행성 기억상실로 인해 사건이 일어난 뒤의 일을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친구 ’마르셀라”의 이야기는 열일 곱 살 소녀가 겪기에는 너무 고통스럽고 공포스럽다.이미 수많은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 종교를 맹신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독실한 신자로 거듭났다고 말하며 스스로 죄를 사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종교에서 말하는 회개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한다.소설은 소녀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지만, 독창적인 전개 방식으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아나의 죽음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면서도 희생자를 탓하고 “죽이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하는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몸서리쳐진다.총칼로 직접 헤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본인들이 분명한데 사랑이라는 알량한 감정과 종교 뒤에 숨은 모습은 한없이 역겹다.작가의 다른 작품 <엘레나는 알고 있다>를 읽은 터라 기대가 컸고 이야기는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지금도 어디에선가 아나가 겪은 고통을 겪고 있을 소녀들과 책임지지 않은 상대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 다른 아나를 만들어 낼 것 같아 무섭다.<푸른숲에서 제공해 준 도서로 찬찬히 읽고 느낌을 적었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책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