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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시간표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밤의 시간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보관된 수상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야간 근무자들이 겪은 기이한 일들과 그곳에 보관된 물건들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 연작소설집이다.
연구소 야간 경비를 하는 눈이 안 보이는 “선배”가 “나”에게 자신이 들었거나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 사람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을 들어가려 한다면 소장님이 나타나서 막아줄 것이다..그것은 조금 특이한 안전수칙이지만 연구소에 잘 어울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45p
연구소 근무자들이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찬은 성 소수자로 치료를 목적으로 종교를 강요하는 가족에게서 도망쳤고 부소장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손가락을 4개나 잃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다.
연구소의 보관된 손수건은 나라를 잃고 복수를 완성한 여자의 한과 잘못된 사랑으로 자식을 망친 어머니의 무분별한 사랑이 함께 한다.
사적인 욕심을 채우려 연구소에 잠입한 DSP가 만나는 양과 부소장에게 깃든 양은 같은 모습이지만 다른 의미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사악한 욕망에 희생되고 죄 없는 동물은 연구라는 목적으로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고양이는 여자가 사랑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다.
다행이라면 잘못을 저지를 사람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벌을 받고 열심히 산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나간다.
“밤에 애들이랑 같이 푹 자는 게 꿈”이었던 청소 아줌마 ‘숙’은 꿈을 이루고 ‘찬’은 자신을 이해하는 ‘각’을 찾는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기이한 연구소는 밤마다 시간표대로 계단이 나타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면서 여전히 번성할 것이다.
햇볕을 쬐어 물건들에 붙어 있던 존재들을 해방시키기도 전에 더 많은 물건들이 들어올 것 같은 현실이 답답하고 막막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