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잇다’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소설을 한 권에 담아 함께 읽는 시리즈로 두 번째 이야기는 지하련과 임솔아의 <제법 엄숙한 얼굴>이다.지하련은 1940년대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한국전쟁 전 시인인 남편 임화와 월북했다는 이유로 잊혀진 작가다.📚지하련은 ‘결혼’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업하는 현실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동시에 ‘하이칼라’식민지 지식인의 위선적인 일면을 지적인 언어로 분석해내며 당대의 문단,지식인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은 작가입니다. 겹겹의 구조로 이뤄진 근대적 억압과 모순을 세련된 방식으로 묘파해내는 그의 작품이 갖춘 현대성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놀랍도록 현대적으로 느껴집니다. 임솔아의 작품은 늘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한 질문을 쥐고서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허위와 폭력,우리가 보지 못했던,보지 않으려 했던 맹점 들을 직시해왔습니다. 임솔아가 일상의 작은 틈새를 담담하게 가리키는 동시에 그 균열의 근원을 좇아 탐구하는 방식과, 식민지 조선의 피폐를 끊임없이 관찰하면서도 기약 없는 비판이나 손쉬운 반성으로 빠지지 않았던 지하련의 회의는 서로 다른 시대임에도 매우 닮아있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중에서)책은 지하련 작가의 단편 4편과 임솔아 작가의 소설 1편, 에세이 1편, 그리고 박혜진 평론가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지하련 작가의 ‘결별’은 남편과 다툰 후 친구 정희의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한 형예의 하루가 이야기의 중심이다.남편의 사랑을 의심하는 형예는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정희와 그의 남편을 보며 자신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제향초’는 요양차 오빠 집에 머물게 된 삼희가 오빠의 지인인 태일을 살피면서 느끼는 당대 지식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의 위선과 모순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제목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지는 ’가을‘은 부인이 죽고 난 후 부인의 친구인 정예와의 이야기를 남편인 석재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마지막 ‘종매’는 사랑이 아닌 연민만으로 병인을 돕는 정원을 돕기위해 나선 사촌오빠 석희와 석희를 찾아온 친구 태식이의 절에서의 생활을 담고 있다.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무기력함과 병자와 그들 사이의 정의내리기 어려운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진다.임솔아 작가의 표제작 ‘제법 엄숙한 얼굴’은 ‘제향초’에서 가져온 제목으로 강릉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중국 동포 영애와 쉴 새 없는 자랑과 그 안에 자리 잡은 우울로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는 카페 사장 제이,그리고 카페 협력 업체 직원인 수경의 이야기다.입으로는 인권을 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돌별하는 제이의 위선이 현대의 우리를 보는 듯하다.오랜 시간 차를 두고 활동한 두 여성 작가의 이야기는 세상살이 다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일제 강점기에도 부부간의 갈등은 있었고 죽은 친구의 남편을 사랑해 어쩔 줄 몰라하는 여자가 있었고 젊은이는 제 길을 찾기 못해 허황된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세상엔 말과 다르게 행동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세상은 크게 좋아지거나 달라지지않았지만 다행스럽게 여성들은 점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살아가고 있다는 데 위안을 삼으며 다음 시리즈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여성작가들을 만나고 싶다.🎁작가정신 출판사 출간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