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힘을 얻어서인지 10년 전 “숲의 대화”로 출간 됐던 소설집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나의 아름다운 날들”로 재출간되었다.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책은 생각했던 것보다 전라도 입말이 덜 등장했고 짐작은 했지만 제목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아니었다.아내의 죽음 뒤 매일 아내가 묻힌 잣나무 숲을 찾던 노인은 오래된 인연의 죽은 빨치산을 꿈인 듯 생시인 듯 만난다.사랑이 워치케 신념이 된다냐.사랑이 신념인 사람도 시상에는 있어라 (p24,25)<숲의 대화>속 사랑이 신념이 되어 죽음의 순간까지 다른 이를 가슴에 품었던 여자를 한 평생 사랑했던 남자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돈은 풍족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모르고 살았던 에이코, 돈과 자식도 없지만 남편 사랑 하나로 행복했던 하루코, 사상범이라는 굴레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사다꼬 할머니는 80이 되어도 소녀처럼 질투하며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봄날 오후,과부 셋>속의 세 할머니는 여전히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의지하지만 에이코 할머니를 보며 세상사 가장 소중한게 사랑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중증 장애를 가진 ‘그’의 천국인 헛개나무 밭에 찾아온 호아에게 <천국의 열쇠>를 건네는 마음이 이미 그는 누구보다 더 건강한 인간으로 살아서 이미 천국에 가까워진 듯하다.늙은 어미의 목욕을 한 번이라도 도운 자식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읽을 이야기 <목욕가는 날>은 남편없이 두 딸을 건실하게 키운 엄마의 고난과 그 엄마를 보는 딸들의 마음이 내 맘 같아 괜히 훌쩍인다.23년이나 자식의 병수발을 드는 늙은 부모의 이야기 <브라보, 럭키 라이프>는 일말의 희망으로 모든 것을 쏟아붓는 부모의 마음도 혼자서는 거동도 못하는 아들의 마음도 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늙은 부모를 찾아와 폐악을 부리는 다른 자식의 마음도 모두 이해돼 더 마음 아프다.누가 <핏줄>속 시아버지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며느리는 맘에 들지만 태어날 손주의 피부색 걱정하는 노인을 욕하기 전에 과연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아동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 가를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싶다.빨치산과 켈로였던 두 노인의 대화 속에 이념이 뭐고 사상이 뭔지 저무는 인생만큼 허무하다.<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를 타고 떠나는 그들의 “간다”라는 인사가 서글프다.언젠가 “세상의 이런 일이”에 나왔던 노인이 생각나는 <인생 한 줌>속 노인이 꿈 속을 헤메는 듯 봉황과 거북으로 끝까지 보는 게 노인에게 행복일까 아님 문득 아무것도 아닌 멋대가리 없이 커다란 바위임을 깨닫는 게 순간이 행운일까 오랫동안 고민하게 한다.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 글이나 쓰며 살려했던 꿈이 산산히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즐거운 나의 집>은 시골인심도 사는 게 희망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진리를 알게 해 준다.“푼돈으로 내가 쟤 하늘이 됐어” (드라마 더 글로리)김 여사는 상냥하게 전화를 끊는다.수술을 한 것 도 아니니 병원비라고 해봤자 100만 원 안쪽일 게다.구두 한 켤레값도 안 되는 돈에 굽실거릴 수 있다는 게 김 여사는 놀랍고 안쓰럽다. 날 밝으면 병원장에게 전화라도 넣어줘야지, 김 여사는 아주머니가 안쓰러워 그렇게 마음먹는다. (p285)표제작 <나의 아름다운 날들>의 문장이 드라마 속 대사와 오버랩 돼 그들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노숙은 하지만 노숙자 되기를 거부하는 남자의 끝이 <절정>과 거리가 먼 삶이라 한 숨이 난다.11편의 단편을 읽으며 절망의 구렁텅이에게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소설의 다 읽고 과연 누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나이 들었지만 돈도 있고 건강도 나쁘지 않은 할머니, 몸은 불편하지만 헛개나무 천국을 가진 남자, 목욕을 다닐 엄마가 있는 여자.’각자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며 실패하기도 하고 그만 됐다 포기하기도 하고 여전히 꿈꾸기도 하지만 태생부터 보통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1프로의 삶을 살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금혼식에 40년 전 남편이 사준 명품 옷을 차려입는 김여사의 삶이 부럽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