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 - 영화관 소설집 꿈꾸는돌 34
조예은 외 지음 / 돌베개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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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영화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의 작은 강당에서다.
박노식 배우가 나오는 방공 영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 50여 호의 동네에 tv 있는 집이 서너 집에 불과했으니 언감생심 극장에서의 영화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는 중학교 때 읍내에 하나밖에 없는 극장에서였는데 너무 어두워 무서웠던 기억뿐 어떤 영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집에도 컬러tv가 생기면서 주말이면 잠을 참아가며 영화를 보았고 고전 영화는 그때 대부분 다 보았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오면서였다.
동시 상연관에서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테스”를 보고 세상에 저렇게 섹시하고 예쁜 여자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랐고 처음으로 본 19금 영화 “매춘”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당시 영화는 나의 유일한 취미였고 남자 친구가 생기면 영화를 보는 것이 데이트의 기본 코스였고 남자 친구가 없을 때는 집에서 비디오를 빌려보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기면서는 영화관은 졸음을 참아가며 아동용 영화를 보는 곳이 되더니 지금은 2시간여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기가 힘들어 즐겁지 않은 곳이 돼 버렸다.
비디오를 대여하던 시절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ott서비스로 맘대로 볼 수 있는 시절이니 굳이 영화관을 찾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와 버렸다.

<캐스팅>은 7명의 작가가 쓴 7편의 영화관이 관련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젊은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소, 우리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선사했던 장소인 영화관에서 펼쳐지는 일곱 편의 이야기는 추억을 떠오르게도 하고 마음이 아련하게도 한다.
이미 몇 편의 소설로 이름이 눈에 익은 작가는 물론 처음 알게 된 작가까지 각각의 개성을 담은 소설은 잘 구성된 종합선물세트처럼 알차다.

호러와 스릴러로 이미 많은 주목을 받는 조예은 작가의 ‘캐스팅’은 작가 특유의 기괴함을 담아 영화 속 조연의 생환과 영화에서 조연을 맡은 배우의 죽음이 등장한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모호함 속에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소설 속 등장인물은 주연인지 조연인지는 인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아야기한다.

📚“우리 삶이, 세계가 누군가 만든 영화라고 쳐. 분명 주인공이 있겠지. 하지만 본인이 주인공이라는 건 어차피 영화를 보는 사람들 말고는 몰라. 네가 스스로 조연인 줄 몰랐던 것처럼 주인공도 자기가 주인공인지 모른다고..그리고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일에 휘말려. 난 그러기 싫어. 그냥 삶에 큰 위기 없이 대사 한두 마디 던지고 퇴장하는 조연, 엑스트라가 좋아.”(p18~19)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살만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윤성희의 ‘마법사들’의 아이들과 조금은 먼 미래의 AI를 빌려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우리가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의 다룬 김현의 ‘믿을 수 있나요’ 속 인물들을 만난다면 꼭 안아주고 싶다.
박수련의 ’안녕,장수극장‘은 실제 어느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쓸쓸한 극장 폐업기 같아 마음이 허전해진다.

📚팬더믹 기간 동안 좋아하던 많은 공간들이 사라졌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종로3가에 있던 서울극장입니다. 1978년 문을 연 서울극장은 2021년 8월 <홀리 모터스>ㄹ르 마지막으로 상영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서울극장을 포함해서, 제 기억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세상에선 사라진 극장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작가의말 ;정은(p172)

사라져가는 관객들과 그로 인해 문을 닫는 극장의 모습을 오버랩하게 하는 정은 작가의 ’사라진 사람‘은 점점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이 떠올라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조해진 작가의 ’‘소다현의 극장에서’를 읽으며 그곳에 가면 핏줄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엄마를 이해하는 딸이 틀어주는 영화를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디인지 짐작되는 장소가 등장하는 한정현 작가의 ‘여름잠’은 그 도시에 여전히 살고 있고 그날의 그 현장의 소식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알고 여전히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알기에 마음이 아프다.

은행잎을 닮은 표지의 책을 받고 아들과 오랜만에 영화관엘 갔다.
멀티플렉스관이라 수많은 영화가 상영되었지만 개봉한 지 오래고 조조라 몇 없는 관객들 사이에서 아들과 나란히 커플석에 앉아보는 영화는 영화의 내용보다도 아들의 마음이 예뻐 더 기분 좋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들과 보낸 시간을 기억해 낼 것이고 그날의 기분에 빠져들다 문득 이 소설집도 기억해낼 것 같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소설들을 읽는다면 과연 오늘의 느낌과 같을 것이라는 장담은 못하지만 2022년 가을 영화관이 아닌 극장에서의 추억으로 나를 이끌었던 작가들을 기억하고 오늘을 떠올리며 행복해질 것은 분명하다.


🎁좋은 책 보내주신 돌베개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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