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고르는 기준은 독자마다 다르다.내 경우 저자, 입소문, 출판사, 그리고 책의 외형 등이다.번역서인 경우 특별한 역자가 아니면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의 경우 선택의 가장 큰 이유가 정보라 작가의 번역이라는 점이었다.폭력이 일상적인 시절을 살았던 어머니는 남편의 폭력에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여기며 살아간다.그 남편이 죽자 아들에게 의탁한 어머니는 남편과 달리 술도 마시지 않고 글을 읽고 다른 노동 운동자들과 토론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불안해 한다.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는 소식지를 전하다 투옥된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스스로 아들을 위해 소식지를 공장에 배포하는 임무를 대신한다.다행히 석방된 아들은 5월1일 노동절에 최선봉에서 깃발을 들게 되고 재투옥되어 재판을 기다린다.아들을 대신해서 시작했던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의해 점점 각성된 어머니는 진정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된다.이야기의 배경이 된 1905년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물론 막심 고리키가 러시아 문학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알지못한다.배경지식이 충분했다면 더 깊은 독서가 됐을 것이고 작가가 의도한 대로 소설을 읽었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소설을 읽는내내 파벨의 어머니 블라소바를 보며 아들의 죽음 뒤 노동 현장에 뛰어든 두 명의 어머니들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했다.1970년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사회운동가 이소선 여사는 아들을 잃고 대단한 사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다.그 당시 빌딩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 3천만원을 제시한 정부에 맞서며 아들을 지켜낸 것은 어머니가 대단히 깨어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이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2018년 한 해가 다 가는 12월에 우리는 스물넷 꽃같은 아들 김용균을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에서 잃은 어머니 김미숙은 분연히 일어나 아들을 기리는 김용균재단을 만들고 노동운동가의 길로 들어선다.파벨의 어머니 펠라게아 닐로브나 블라소바가 그러했듯이 아들의 의해 각성하고 아들의 뜻을 기리며 진정한 노동자의 어머니가 된 두 분을 보며 어머니라면 그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백년도 더 지난 소설을 읽으며 사회주의 사상이 옳으니 그르니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어머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작품이라는 데 그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번역가의 친절한 해설편을 읽으면 막심 고리키의 사상에 대해서는 물론 소설이 전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사상과 의도를 읽을 수 있어 미천한 글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전태일 열사의 죽음 뒤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 현장은 열악하고 여전히 같은 일을 하며 처우가 다른 노동자가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퇴근 후 안녕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있고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있다.먼 나라, 먼 시절의 이야기를 현재의 대입하는 건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가도 그 시절의 노동자에 대한 처우와 지금의 처우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몹시도 마음이 시끄러운 소설 읽기였다.🎁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신 을유문화사께 감사드립니다.읽은 후 주관적인 느낌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