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ㄱㄴㄷ
박상철 지음, 강근영 그림 / 여우고개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활짝 웃고 있는 아기 고슴도치가 그려진 책표지를 살짝 넘기면 연둣빛 풀밭사이로 난 노란 길을 따라 고슴도치 네 마리가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고슴도치 ㄱㄴㄷ”이라는 책 제목만으로도 한글을 가르치는 데 도움을 줄 책임을 짐작할 수는 있지만 글자 익히기보다는 왠지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듯해 기대가 됩니다.


(기역) 고슴도치 네 마리가 

(니은) 노란 보따리 하나 들고 놀러가요. 하나, 둘, 셋, 넷. 친구에게 놀러 가요.

(디귿) 씽씽 바람 부는 들판을 지나

(리을) 라일락꽃 언덕을 넘어서 가요. 어? 이게 뭐야?

(미음)우아, 미끄럼틀이다! 내려간다.


각각의 자음이 포함된 단어들이 들어간 문장은 고슴도치가 친구 집을 향해 즐겁게 나아가는 모습을 억지스럽지 않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끄럼틀의 존재를 아는 순간 한글을 다 아는 1학년 아이도 즐거워하는 걸 보면 그림책의 적정 연령은 정해진 게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림책으로 한글을 가르칠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글자 한글자한글자씩을 짚어가며 읽어주는 엄마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게 글자를 짚어가며 읽는 것은 아이에게 그림책 보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리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을 동시에 보며 즐기는 것이고, 글자보다는 그림에 더 비중을 둔 책인데도 그림 말고 글자보기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른들 눈높이의 그림책 보기인 것만 같습니다.


1학년인 둘째는 한글을 읽지 못한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자 익히기에 압박을 주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학교 갈 나이가 되도 도통 한글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서 어쩌나, 어쩌나 하다가 입학을 하게 되었지요.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윽박지르지 않고 용기를 북돋으며 지켜본 결과 5월이 되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학기가 다 끝나가는 요즘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국어실력을 갖게 되었으니 다 때가 되면 한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새삼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딱히 한글 공부를 위해 학습지나 교구를 사용해 보지 않고 그저 그림책이나 부지런히 읽어주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익힌 터라 따로 한글 교재를 구입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림책만으로 한글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한글과 친해지는 수단이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토끼의 근사한 생일 파티 식탁에 놓인 하얀 생크림 케이크에 침 한번 꿀꺽 삼키고 마지막 면지에 눈길이 줍니다.

토끼가 꽃무늬 보따리를 들고 고슴도치가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 보따리 속 뭐가 들어있나 궁금해지고 어떤 고슴도치의 생일일까 아이와 한참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징검다리라는 단어에 초록 수양버들과 푸른 냇물에 놓인 돌을 기억할 것 같아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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