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 - 지도에 없는 나라로 떠나는 여행 안내서
산토 실로로 지음, 전지나 옮김 / 오래된미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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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한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속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두 시간 정도 미친 사람처럼 낄낄거리게 될 거라더니, 웬걸 책을 읽는 동안 씁쓸한 웃음만 내내 입가에 머금다가 말았다. 벽을 치면서 혹은 방바닥을 구르면서 웃게 될 거라는 유머는 그저 저급한 화장실 문화에 버금가는 억지 우스갯소리일 뿐이었다. 차라리 적나라한 화장실 유머나 되면 속시원하게 욕지거리 지껄여가며 흔쾌히 동조라도 해주지. 젠장!

<우리는 몰바니아로 간다>는 허튼 말장난과 가상국가 몰바니아로 대표되는 제 3세계(난 이 단어조차 싫다. 마치 지들이 주류인 양 가지지 못한 이들을 향한 손가락질인 것만 같아서)에 대한 일그러진 냉소로 가득한 책이다. 가진 자들의 지긋지긋한 오만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아주 지겹도록 자주.

그럼에도 중간에 차마 책장을 덮지 못한 이유는 한 번 붙잡은 책은 끝장을 보고 만다는 평소 신념과 가끔, 아주 가끔 들여다보이는 신랄한 조소가 그나마 지겨움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론리플래릿을 고대로 흉내낸 그 아까운 재주에 별 2개를 아낌없이 주는 바이다.

덧. 책에 수록된 사진들을 보면서 풍경사진은 그렇다치고, 저자가 인물사진들 속의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초상권에 대한 사전 이해를 어떻게 받아냈는지 의문이었다. 그들은 본인들의 사진이 풍자와 해학과는 거리가 먼 한낱 우스꽝스런 광대처럼 이용된 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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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란 무엇인가 - 뉴미디어총서 3
사이드 필드 지음, 유지나 옮김 / 민음사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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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글쟁이들에게 꽤 유익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가까운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구입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써야겠다는 생각이나, 대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얻고자 읽지는 않았다. 이야기 구조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지인의 말에 혹했다고나 할까.

주로 영화 시나리오들을 텍스트로 해서 만들어진 책인데, 지인의 말처럼 이야기를 엮어가는 그 방법론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다. 다만 그것이 시나리오라는 한정된 장르에 국한되기 쉽다는데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일단 시나리오는 소설이라는 장르에 비해서 제한된 분량(혹은 시간) 안에 모든 이야기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그런지 시나리오 작법은 이미 도식화된 철저한 계산법에 의거하고 있었다. 앞부분 어디에 첫 번째 구성점(Plot Point)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결말이 충분히 암시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소설이 주로 기-승-전-결의 4분화된 구조를 갖는 것에 비해 시나리오는 전체를 3가지(시작, 중간, 결말) 영역으로 구분을 짓는다. 그러나 중간부분이 각각 시작부분과 결말부분의 2배가 되기 때문에 분량에 의한 구분으로 본다면 기승전결 구조와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어쨌든 시나리오 작법이나 소설 작법이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엮어가야 하는 것이기에 나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 책은 구성점에 관해서 그간의 내 생각을 새롭게 정리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방해장치를 이용해야 한다는 정설을-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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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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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란 무엇인가>를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왠지 제목부터가 사람을 확 잡아끄는 매력이 있어서 만만치 않은 책값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구입을 했다. 이왕 작법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한 것, 이번 기회에 플롯에 대해 확실히 해두자는 마음에서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시나리오란 무엇인가>가 주였고, 이것은 그저 곁다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막상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을 읽고 나자 내 머릿속에서 곧바로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다. 어쨌든 심심한 글만 육장 써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나에게는 참으로 유용한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바라기는 명작과 졸작의 경계에 플롯이 있다는 역자의 주장이 명명백백한 사실이었으면 싶다. 그래야 내 공부가 전혀 헛되지 않을 테니까. 마치 고3 수험생이던 시절로 돌아가 색색의 사인펜과 공책을 앞에 두고 밑줄까지 쳐가면서 공부를 했다. 물론 수학정석을 풀던 그때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작법 공부 중에서도 특히 플롯에 대해서는 독파를 하고 난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은 제 1부 좋은 플롯이란 어떤 것인가, 제 2부 흥미와 박진감이 넘치는 스무 가지 플롯으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각각의 장으로 세분화가 되어 있어서 굉장히 유기적인 구조를 갖는 책이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조목조목 소제목을 두고서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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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조은 지음, 최민식 사진 / 샘터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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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생을 가난하고 소외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척박하고도 애틋한 삶을 카메라 렌즈에 담아낸 최민식님의 사진집이다. 백 장 가까운 그 흑백의 사진 속에서 나는 빨강이니, 파랑이니, 노랑이니 하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온갖 종류의 색채들을 만났다.

그렇게 각각의 사진들을 5분씩 혹은 몇 시간씩 들여다보면서 가슴 뜨거운 삶과 해후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죽음과 맞부딪히기도 하는 등 인생군상의 요런조런 희로애락을 경험했다. 또한 내 스스로를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자신의 사진이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저자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정한 작가정신과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사진 속 내 이웃들의 때 묻지 않은 순박한 모습이 나를 숙연하게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마다 그 예민함의 경중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감 중에서도 특히 더 민감한 감각이 하나씩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이 시각일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청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미각이 될 수도 있겠다. 난 대체적으로 소리에 예민한 편으로 보통 사람들은 적막하다고까지 느끼는 조용함을 즐기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도 주로 리듬이 무겁고, 비트가 느린 것을 찾는다.

이러한 성향 탓일까? 그림이나 사진을 고를 때도 입체감이 두터운 작품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시각이 그다지 민감하지 못한 나는 그림보다는 좀더 사실적이고 현장감이 더한 사진을 훨씬 좋아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풍경사진을 즐긴다. 왠지 그림도 그렇고, 사진도 인물을 중심으로 한 경우에는 쉽게 동화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보도사진일 경우에는 예외이다.

처음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잠시 구입을 망설였다. 이 책의 저자인 최민식님이 주로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것을 언젠가 귀동냥으로 들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다 신문에서 서평과 함께 나란히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보고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갔다.

때로는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할 때가 있다. 바로 최민식님의 사진이 그렇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눈앞을 뿌옇게 흐트러트리고, 가끔은 영혼까지도 파르르 떨게 한다.

덧붙임; 각각의 사진마다 몇 줄씩 달려 있는 시인 조은님의 설명은 차라리 없었던 게 나을 뻔했다. 나에게는 그 짤막한 글조차도 사진이 갖는 본연의 모습을 멋대로 퇴색시키는 군더더기로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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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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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다. 나 역시 [칼의 노래]를 평하기에 있어 이 한 줄의 문장이면 족하다는데 동의하는 바다.

책을 읽는 동안 칼이 부르는 장중한 노래들은 내 갈급함에 단비처럼 젖어들었다. 무거운 사유로 혹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들려오던 칼의 노랫소리가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금까지도 귓전에서 여전하다.

이 책은 ‘나’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사건을 풀어나가는 1인칭시점소설이다. 흔히들 1인칭시점은 글을 단조롭게 만들고, 독자들의 감정이입에 방해를 준다고 한다. 하기야 ‘나’라는 인물 한사람의 시각을 통해서만 글이 전개되기 때문에 답답한 진행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온전히 ‘나’가 되지 못하는 독자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제 3자의 입장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칼의 노래]에서의 1인칭시점은 최선의 선택이자 너무나도 절묘한 선택이 되었다. 허구의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의 기록을 읽어가는 듯한 현실감과 생생한 현장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더욱이 독자로서의 내가 또 다른 ‘나’로 대변되는 장군의 감정에 고대로 이입이 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장군의 심정에 동화되면 될 터.

김훈의 폐부를 찌르는 글귀와 간결한 문장들은 시종일관 극한의 아름다움을 발한다. 흡사 장검을 허리에 찬 이순신 장군의 육성이 칼의 노랫소리와 한데 어우러져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知天命의 나이 선상에 놓여있는 사내의 글귀와 문장들이 이리도 가슴을 에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문득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나이이기에 가능한 글은 아닌가 싶었다.

김훈의 문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온통 간결하다. 화려한 수사도, 절절한 꾸밈도 없이 그저 담담할 뿐이다. 심지어 그의 표현기법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적나라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그 간결하고 담담한 글 속에 장군의 절박한 심사는 물론, 곡진한 조국애와 애달픈 민족애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수철아, 죽지마라. 명령이다.' 종사관 김수철에게 던진 이 간략한 말 한마디만으로도 장군의 수하 장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또한 장군이 아들 면의 죽음을 대하고서 하루 종일 정사를 물린 채, 환도 두 자루와 면사첩이 걸린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고 대목이 있다. 격한 울음을 토해냈다는 글귀보다도 더 애잔한 父情이 느껴져 왔다.

해소기침이라는 단어로써 표현된 선조의 충신을 향한 뒤틀린 애증은 나로 하여금 아주 오래 전 역사를 전공하던 친구의 말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때 녀석은 장군이 왜란이 끝난 후에도 살아있었다면, 분명 당쟁의 제물이 되어 치욕적인 죽음을 맞았을 거라고 했었다. 불현듯 장군이 끝없이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맸다고 기록한 김훈 역시 그 친구와 같은 맥락에서 글을 이어나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렇듯 내게 [칼의 노래]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어쩌면 이 책은 장군의 애잔한 심사를 한 올 한 올 풀어놓은 김훈의 노래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만족스런 소설을 읽은 것 같아 가슴마저 뿌듯하다.

단지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사 속에서 자취 없이 스러져간 여인네들을 바라보는 김훈의 시선이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 중 사내들 모두가 각각의 성명을 갖고 불리어진다. 수영 내에서 소금을 굽는 종까지도 한번도 그라는 3인칭 대명사로써 불리어지지 않는다. 꼬박꼬박 성과 이름이 함께 거명된다.

그런데 몇 등장하지도 않는 여인네들은 한결같이 그저 그 여자일 뿐이다. 심지어 장군과 잠자리를 나누고, 그의 사고의 폭 안에서 중요한 매개체역할을 하는 여진조차도 언제나 그 여자일 뿐이다. 단순히 3인칭 대명사로써만이 불리어진 그녀들…….

역사라는 것이 늘 힘있는 자, 승자의 기록이듯 또한 남자들의 기록이기 때문이었을까? 바라기는 이제 그 이름 없이 스러져간 눈물겨운 여인네들에게도 각각의 이름들이 하나씩 붙여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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