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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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의 두번째 산문집 <다독임>. 다독임이라는 말에 한참을 멈춰있었다. 표지에 실린 사진 속 곰인형을 보고는 사촌동생의 동그라미 인형 솜사탕이 생각났다. 사촌동생과 나는 기운이 빠질 때마다 ‘솜사탕 파워‘가 필요하다며 저녁 내내 솜사탕을 꼭 껴안고 있고는 했다. 내가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날에는 사촌동생이 나에게 살금살금 다가와 솜사탕을 안겨주기도 했다. 포근함, 어린아이, 인형, 천진함, 다정함, 그리고 <다독임>.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의 다정함에 큰 위로를 받았다. 이는 바로 문장의 결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었는데, 실상 문장은 쓰는 이의 마음을 드러내므로 나는 시인의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셈이다. 글의 주요 소재는 시인이 일상속에서 귀기울여 관찰한 것들과 경험한 것들로, 그는 자신의 깨달음과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예술작품을 멋들어지게 열거하거나, 온갖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온전히 시인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쓰여진 글들이라 더욱 좋았다. ‘말‘짓기와 ‘태도‘짓기에 집중한 글들이라서 더더욱!



나는 122페이지의 여백에 ‘이 책은 따뜻한 봄날의 오후 2시의 햇살같다‘고 적었다. ‘무뎌지지 않는 새로운 일상, 오은의 글‘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아주 작은 것들에 집중하는 것,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놓는 것, 그리하여 세상만사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 -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독임과 다정함이 필요한 이들, 햇살의 따뜻함이 필요한 이들, 일상 속 새로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독임>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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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무더위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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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 미스터리. 미스터리의 서브 장르 중 하나로 ‘폭력 행위가 비교적 적으며, 끝 맛도 깔끔한 미스터리‘다. 스릴러나 하드보일드와는 다르게 일상적이고 낙관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 작품을 연달아 만나게 되어 피곤하던 중, 정신적 피로도 없이 즐겁게 읽었던 코지 미스터리 한 권. 와카타케 나나미의 <조용한 무더위>.



미스터리 전문 서점인 ‘살인곰 서점‘의 파트타이머인 하무라 아키라의 원래 직업은 탐정이다. <조용한 무더위>는 7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챕터마다 하무라가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맡아 조사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일단 하무라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인데, 탐정 일로 의뢰가 들어오면 심드렁하다가도 수사금에 눈을 번쩍 뜨며 착수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폼생폼사 하지 않는, 정말 일상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인물이랄까. 툴툴거리면서도 서점 일이든 탐정 일이든 막상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멋있고!



일단 간결하게 나누어진 여섯 챕터 아래 여섯 사건이 어떻게든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라 속시원했다. 복잡하게 꼬여서 예측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물도 좋지만 일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이 하나씩 마무리되는 과정을 읽는 것도 통쾌하다. 가장 재미있었던 사건은 ‘10월 소에지마 씨 가라사대‘였다. 낡은 집을 구매해 직접 거주하며 리모델링을 한 뒤 다시 판매하는 직업이 등장하는 것도 신기했고 사건의 해결 방식도 천연덕스러워 기억에 남는다.



찾아보니 지금까지 출간된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는 총 8권. 그중 3권만이 번역되어 있다. (초기작 두 편은 번역되었으나 절판.) 시리즈는 한 번에 달려야 하는데! 꼭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괜찮은 책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번역 출간된 <녹슨 도르래>도 바로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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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0 소설 보다
김혜진.장류진.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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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이어 가장 가성비 넘치는 단행본이라고 생각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 가장 최근의 한국 문학과 저자 인터뷰를 동시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처음 읽을 때도, 책태기가 왔을 때도 읽기 좋은 책이다.



2020년 봄의 ‘이 계절의 소설‘로는 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세 여성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김혜진의 ‘3구역,1구역‘에서는 재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한 두 여성이 등장한다. 인간은 마냥 선하지도 마냥 악하지도 않다. 이 소설 속 두 인물 또한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 모습을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사연을 더 들어보고 싶고, 두 사람의 미래가 궁금하다. 이 이야기가 장편으로 쓰여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을 읽으면서는 그야말로 박수 백만번!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청년세대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소설은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유지원과 이찬휘가 같은 조가 되면서 시작된다. 가장 오래 머물러있었던 문장은 취준생인 주인공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큰 회사라는 건 망하지 않는다는 뜻일테니 대성공보단 폭망하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화룡점정은 유지원이 자신도 모르게 이찬휘의 외모에 홀려버리는 순간이다. (인터뷰에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지하철에서 읽다가 기립박수 칠 뻔 했다. 꼭 읽어보시길!) 으아 장류진의 다음 이야기가 너무 너무 기대된다.



마지막은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 보나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겪는 정치적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소설이다. 일기예보처럼, 일상 속에서. 심지어 영화 <벌새>의 영지 선생님 이야기가 나온다! 영자원 이야기도! 인터뷰에서 저자가 ‘사랑이냐 혁명이냐가 아니라 사랑과 혁명.‘이라고 답한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사랑과 혁명은 공존할 수 있다. 반드시 하나의 가치만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또한, 정치는 일상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내 주변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가져야만 하는 시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소설 읽기 너무 재밌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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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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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 <소란>이 난다 출판사에서 새 옷을 입고 나왔다. 같은 글들이지만 북노마드에서 나왔던 버전과는 다르게 묶였고, 책의 판형과 활자, 표지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글들인데도 처음 읽는 것 같았다. 물론, 좋았다.



<소란>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도 슬픔도 외로움도 넘친다. 조금은 날카롭고 방어적인 것도 같다. 그렇지만 비장함 또한 느껴진다. 다 사랑하고 나서, 다 울고 나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소란>의 저자가 몇 권의 책을 지나 <모월모일>에 당도했다고 생각하면 좀 멋지다.)



몇 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의 태도도 전부 변했다. (성장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그런가?) 같은 책을 여러번 읽을 때의 묘미는 과거의 자신 또한 겹쳐보인다는 것. 당시 나는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바보 이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글을 특히 아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때는 알고서도 외면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아끼는 글들 중 하나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는 <소란>이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밝힌다. 또한 당시 글을 쓰면서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아 자유로웠노라고. 당신이 생의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든 ‘어림’을 사랑하는 이라면 단번에 이 책을 아끼게 될 것이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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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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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에 이은 정희진의 글쓰기 두번째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이 책에는 전작에 이어 저자가 한겨례에 연재했던 ‘정희진의 어떤메모‘ 칼럼 63편이 실려있다. 저자는 각각의 글마다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적는다. 그러니 이 책을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서문에 적힌대로 ‘나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행하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면, 저자는 단순히 쓰는 일을 넘어 읽고, 성찰하고, 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과연 그는 ‘살아내는 대로‘ 쓰는 사람이다.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쓴 글 속에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안다. 글만큼 글쓴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적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글쓴이가 문장 앞에 얼마나 솔직했느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치열하게 사유하고 그것들을 숨김없이 풀어냈다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으리라. 또한 ‘내가 쓴 글은 (그 당시의) 나 자신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좋아하는 책들이 자주 등장해 기뻤다. <침묵의 세계>, <늙어감에 대하여>, <캐롤> 그리고 <헝거>외 몇 권 더. 하지만 정작 나를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었다. : ‘˝나는 전혜린˝이며 예술가는 모두 백혈병으로 죽는 줄 알았던 감상적인 문학 소녀‘(95p), ‘독서의 문장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해서다.‘(121p). 더 많지만 여기까지만 적겠다. 나를 들킨 것 같아서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된 것들도 많았다. 동화가 ‘아동에게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당연하게도 현실에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없다. 아,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한 여성 혐오적인 판타지는 동화로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이번 책에서는 삶과 죽음, 외로움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다시금 이 책을 바쁘게 들춰보며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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