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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평점 :
하루일과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해 질 녘 집 근처 강변을 짧게 산책할 때다. 외출을 하지 못해 답답하던 차에 궁여지책으로 인적드문 강변이라도 걸어보기로 한 것인데, 이제는 아침부터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힌 할 일을 잠시 미뤄두고, 온갖 SNS를 넘나드는 일도 멈추고 그저 천천히 걷는다. 흐르는 물과 타오르며 지는 해와 흔들거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시간>은 시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것들, 즉 느림, 끈기, 사색의 결과물들을 소개하며 그것을 예찬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 한 번 손에 들면 휘리릭 읽어버리는 나지만, 이 책만큼은 천천히 아껴가며 읽었다. 그렇게 읽는 것이 어울리는 책이다.
저자는 미술, 수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간이 소요되는 일들을 꼽아 소개하고 있다. 우체부가 33년동안 만든 성, 수 백년간 미결로 남았던 수학 문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세계에서 가장 긴 오르간 연주! 가장 재미있었던 챕터는 ‘눈 위의 흔적‘이었는데,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깨알같은 손글씨와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그의 깨알같은 손글씨가 20년동안의 해독과정을 거쳐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일화는 언제 들어도 놀랍다.
빠름은 좋다. 그러나 느림은 더 좋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좋다. 속도에 치이는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날, 더더욱 시간을 재조명하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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