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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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인지 삭막한 집을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중 첫번째로 생각난 것이 반려식물 기르기였다. 이는 최근 집 근처에 꽃집이 여러군데가 생긴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열흘에 한 번쯤 절화를 사면서 흘끔흘끔 화분에 담긴 초록이들을 쳐다보곤 하니 말이다. (몬스테라 쪽으로 거의 마음이 기울었다.)



디어클라우드의 이랑, 이 책에서는 식물 에세이스트 임이랑. <아무튼, 식물>에 이은 저자의 두번째 식물 에세이다 :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나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괴로우니 식물을 엄청 많이 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잠시 고민했다.)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의 이 책에는 반려식물과의 일화와 식물원 탐방기등 다정하고 섬세한 글들이 잔뜩 실려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식물을 통해 삶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특히 ‘모든 동식물은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존재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문장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상대를 존중할 것. 그 존중은 다른 사람 뿐만 아니라 동식물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한 자리에서 고스란히 견디며 살아가는 식물을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식물 애호가 뿐만이 아니더라도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이 큰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나는 식물처럼 사람도 그러하리라는 깨달음, 우울한 날이면 도시 식물 산책을 통해 힘을 얻기 등등 삶에 위로가 되는 문장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파릇파릇한 초록을 무성히 늘어뜨리며 가끔은 화려한 꽃과 열매를 보여주기도 하는 식물, 그리고 그런 식물을 사랑하는 이가 쓴 글. 조곤조곤한 저자의 글들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의 집에는 반려식물이 생겨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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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
이마무라 나쓰코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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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지 않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보라색 치마’라고 부른다. 화자인 ‘나’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겠다는 목표를 가진 인물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구인란이 ‘보라색 치마’의 눈에 띄도록 두기까지 한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공을 들인 덕분인지 ‘보라색 치마’는 ‘나’가 일하는 호텔에 일자리를 얻는다.



기묘한 소설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말년의 마츠코(<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를 연상케했던 ‘보라색 치마’는 점점 ‘정상인’이 되어가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나’는 스토커에 가까워진다. 도대체 왜 ‘나’는 ‘보라색 치마’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걸까? 왜 ‘나‘는 당당히 말을 걸지 않고 끊임없이 겉돌며 관찰만 하는걸까? 이 소설은 의문점 투성이다.



거듭 생각할수록 이 소설의 장르는 스릴러같다. 독특한 인물이었던 ‘보라색 치마‘가 점점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가면서 비교적으로 선명해지는 ‘나‘의 집요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어째서 ‘나’는 생활의 모든 초점을 ‘보라색 치마’에게 맞추고 있는가? 독자는 끝까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화자인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는 ‘보라색 치마‘를 쫓아다니는데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쌓아지는걸까? 소설 속에서 ‘나‘는 호텔에 취직한 사람들이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문득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줄 모르는 현대인들이 떠오른다. 젊은 세대일수록 사무실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를 받기 어려워한다는 뉴스 기사를 언젠가 읽은 기억이 있다. ‘나‘가 자꾸 ‘보라색 치마‘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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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끝
에두아르 루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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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생 에두아르 루이가 22살에 출간한 자전적 소설 <에디의 끝>. 프랑스 북부 산업도시에서 나고 자란 에디는 남성이지만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따돌림을 당한다. 가난, 폭력, 무지가 끊임없이 대물림되는 작은 마을에서 에디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물리적인 탈출 뿐이다. 이 소설은 에디가 마침내 마을에서 벗어나기까지의 성장사를 담고 있다. (트렌스젠더 인권 활동가 Paris Lees와 엠마 왓슨의 인터뷰 영상(British Vogue) 말미에 이 책이 언급되는 것을 본 뒤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책 속의 폭력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고 잔인하여 출간 직후 기자들이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저자의 고향 마을을 찾기도 했다고. 에디의 친구들은 상습적으로 그에게 침을 뱉고 구타를 가한다. 마을 사람들은 에디를 무시하고 조롱하며 부모는 그런 아들을 부끄러워한다. 에디는 필사적으로 ‘남성성‘을 어필하기 위해 애쓴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보고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디가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점점 확고해진다.



마을 사람들은 왜 ‘남성성‘에 천착하는가? 왜 ‘남성성‘의 규범에서 벗어난 에디를 괴롭히는가? 저자는 이를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에디가 나고 자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공장 노동자이고 경제적, 문화적인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이들이다. 가난과 폭력, 무지가 계속되는 이유다. 계급의 문제다. 그게 전부인가? 우리는 소설의 말미에 에디가 가까스로 마을을 탈출했을 때, 소위 부르주아들이 에디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호모 새끼‘. 공장 노동자들이나 부르주아들이나 작은 마을에서나 도시에서나 동성애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사회 구조적인 억압 속에서 에디가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차별과 혐오, 배제는 유해하다.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재생산하는 가부장제도 유해하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에디의 이야기가 비단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나는 당신들이 끊임없이 불편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기억하자. 계속해서 배우고, 공감하고, 변화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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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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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이면 돌아오는 기쁨,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올해 작품집은 유독 한 편 한 편이 크게 느껴졌다. 작품에 담긴 이야기도, 그것을 풀어나가는 작가들의 솜씨도, 작가노트에 담긴 단상들도 아주 진한 핫초코같았다. 무겁고 진득하지만 달콤해서 계속 마시게 되는 핫초코. 심사평에 이르러 서영채 문학평론가의 ‘대단한 공력이 느껴졌다‘는 표현을 읽고 ‘내가 느낀게 이거였어! 역시 문학평론가는 다르다.‘하고 생각했다. 딱 그거다.



이번 작품집에는 강화길의 ‘음복‘을 필두로 최은영, 김봉곤,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의 작품들이 수록되어있다. 작품집을 읽다보면 유난히 마음이 가는 작품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선뜻 고르기가 어려웠다. 일곱편 모두 작가들이 각각의 스타일로 공력을 쏟아부은 작품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책을 내지 않은 이현석, 장화원 두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는데 정말 놀라웠다. 꼭 기억해두었다가 첫 책이 출간되면 놓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작품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대상 수상작인 ‘음복‘은 몇 번을 읽어도 놀라운 작품이다. <소설 보다 가을 2019>를 통해 처음 읽었던 작품인데, 이번에 새로 읽으며 그 때는 이 소설의 진가를 제대로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제 내에서의 권력 관계, 무지와 앎, 그것의 재생산 그리고 스릴러를 방불케하는 스산함까지. 직접 보고 자란 제삿날의 일화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경험을 했는데 이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챈 나의 눈치가 얄미워질 지경이었다. 소설을 쓰는 건 멋진 일이라는 작가의 말도 계속 기억에 남는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와 장희원의 ‘우리(畜舍)의 환대‘도 특히 놀라운 작품이었다. 어떻게 놀라운 작품들인지는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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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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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파고드는 김혜진 작가의 첨예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몇 번이고 재개발이 무산된 달동네 남일동은 주민들로부터도 외면받는 곳이다. 주민들은 남일동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길 하나 건너기만 하면 중앙동인데도 남일동과 중앙동은 완전히 다른 취급을 받는다. 두 동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차별과 혐오를 생산하는 구분선이다.



주인공 홍은 운좋게 어렸을 때 남일동으로부터 탈출했다. 이는 홍의 아버지가 경매로 싸게 구매한 집이 중앙동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홍은 두 세계 사이에 선 인물이기도 하다. 따돌림당하는 직장 동료를 돕다가 표적이 되어 퇴사를 감행한 서른 남짓한 홍. 그녀는 다시 남일동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는 우연히 새로 이사온 주혜와 딸 수아를 만나면서부터다. 처음에 주혜는 적극적이고 명랑한 태도로 삶을 꾸려가는듯 보인다. 그러나 재개발과 과거 직장에서의 문제가 불거지며 주혜 또한 서서히 ‘남일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남일동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간다. 홍은 이 모든 과정을 주변인으로서 겪는다.



<불과 나의 자서전>은 홍이 한때 자신의 일부였던 남일동의 그림자를 제대로 마주보게 되는이야기다. 동네에 드리운 것으로도 모자라 주민들의 마음까지 잠식해버린 그림자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남일동이 재개발된다면 그림자는 사라질 수 있을까?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어디에 속했는지의 여부로 나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 아득하다. 이 책을 읽는 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운가? 무력해진다. ‘영웅 없는 이 소설의 패배(해설 중에서)‘는 소설 속 인물들을 비롯해 이 소설을 읽는 우리 모두의 패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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