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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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로 새롭게 만나게 된 소설 <여름을 지나가다>. 2015년에 출간된 이후 5년만에 만나는 개정판이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로, 민과 수호 두 인물을 중심으로 도시 속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각기 힘겨운 사연을 가진 민과 수호가 서로를 스쳐지나가기만 하다 마주하게 되는 장소는 문 닫은 가구점이다. 목수이자 가구장이인 수호의 아버지 손길이 하나하나 닿은, 그러나 이제는 먼지만 켜켜이 앉은 쓸쓸한 곳. 시간이 멈춘듯한 이 공간이 민과 수호를 유일하게 숨 쉴수 있게 만드는 듯하다. 소설은 이들 뿐만 아니라 은희 할머니와 쇼핑센터 옥상 놀이공원의 연주를 등장시키며 화려한 도시 이면에 쌓인 쓸쓸함과 가난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제목은 ‘여름을 지나가다‘로 소설의 구성 역시 시간의 흐름을 따른 6,7,8월이다. 뜨거운 햇빛이 가장 높이 타오르는 계절, 소설 속 주인공들은 힘겹게 여름을 지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비와 폭풍을 피할 수 있는 가구점이 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들은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여름이 지나가고 텅 빈 가구점을 떠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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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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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덕후이자 여성 서사 덕후라면 무조건.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소설 <키르케>. 서양 문학에서 최초의 마녀로 불리는 키르케의 이야기다. 태양신 헬리오스와 님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여 일 년동안 자신의 섬에 붙잡아둔 마녀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녀는 왜 마녀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을까? 그녀는 왜 아이아이섬에 홀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위와 같은 질문들에서 출발하여 본격 ‘여성 서사시‘로 재탄생한 소설이 바로 <키르케>다.



키르케는 신이지만 말단에 불과한 님프다.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가족들에게도 무시받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녀가 아버지인 헬리오스에게 매달린 것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결국 키르케는 희생양이 되어 아이아이섬에 유배당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1/6쯤 될까. 결국 <키르케>는 키르케가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꾸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갖춘 여성의 상징(=마녀)‘인 키르케가 남들이 만들어낸 수식어를 걷어내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다.



일전에 <아킬레우스의 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이번 책도 역시 기립박수감이었다. HBO에서 8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될 예정이라는데 과연. 가장 인간과 닮은 신이자 신의 광휘를 부담스러워하는 신. 프로메테우스의 정신적 후계자이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도구로서 마법을 익힌 최초의 마녀. 결국 세상 모든 여성들과 다르지 않은 한 여성.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키르케의 모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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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쓸모 - 마케터의 영감노트
이승희 지음 / 북스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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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 하고 싶어서 기록을 시작했다는 저자. <기록의 쓸모>는 마케터이자 다양한 sns에 기록을 계속하는 사람인 저자가 기록의 여정에 대해 쓴 책이다.



책 속에는 저자가 어떤 방법으로 기록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부터 기록을 하고나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 변화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있다. 이미 기록을 즐기고 있는 이들에게도, 기록을 시작해볼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일 것 같다.



오래 전 인스타그램의 영감 노트 계정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매일 수많은 영감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기록의 형태가 생각보다 다양할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영감 노트라니!



뭐든 기록하다보면 얻어지는게 있다는 말을 몸소 보여주는 결과물이 바로 이 책, <기록의 쓸모>이기도 하다. 나 또한 온오프라인으로 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인데, 나의 기록들이 모여 무언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꿈꾸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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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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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괜히 더 설레는 마음이다.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티켓을 손에 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며칠에 나눠서 기쁘게 읽었다. 소설들의 도입부가 하나같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이미 지나간 관계나 기억을 회고하는 소설들이 많은데, 대부분 첫 문단에서 그 기억의 정경이 그려진다. 나뭇잎의 일렁임, 종로 거리의 풍경, 진홍빛 위스키. 첫 문단에서 ‘어..? 이 표현들 뭐지?’ 하다보면 다음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작품들은 ‘밤의 물고기들’, ‘우리는 같은 곳에서’, ‘휘는 빛’ 이렇게 세 편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천천히 걷다가 잠깐 우뚝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 같다. 그 사람을 만났던 초 여름 저녁을 떠올리고, 아내와 과거 아주 잠깐 연인이었던 영지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던 날을 떠올리고, 지우지 않은 글을 발견하고 과거 직장 동료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생애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니나 문득 생각나는 조금 뜬금없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라고 느꼈다. 독특했다.



작가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성별을 고민했다는, 그리고 소설들을 마무리한 지금은 더 이상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작가. 이후의 작품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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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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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생일에 맞춰 출간된 유고 산문 <오늘의 착각>. 2014년부터 2년간 계간지 <발견>에 연재되었던 여덟 편의 글이 실려있다. ‘발견은 없다. 다만 어떤 상황을 착각으로 살아내는 미학적인 아픔의 순간이 시에는 있을 뿐이다.‘(5p)라는 작가의 말대로 착각의 순간, 미학적인 아픔의 순간, 시를 살아내는 순간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각각의 글들에서는 시인이 직접 보고 겪었던 과거의 일들과 2010년대의 크고 작은 사건들, 김행숙과 강정, 다자이 오사무 등의 문학인들이 다수 등장한다. 시인은 이 조각들을 문장으로 엮어내는데, 그가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시에 대한 것이다. ‘시 쓰기는 아무것도 목표하지 않는 아무것도 계몽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위에 이른다‘(32p)는 문장이나 ‘감각 때문에 어느 시인은 젊어서 몰락하기도 하고, 감각 때문에 어느 시인은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도 한다.‘(111p)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사유는 매 순간을 시인으로서 사는 이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의 분량은 130쪽 남짓이지만 단번에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을 때 더욱 깊게 다가오는 글들이다. 착각, 고향, 떠남, 고아, 난민, 폐허….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조엘 마이어로위츠의 사진들이 자주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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