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곳에서
박선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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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괜히 더 설레는 마음이다. 알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하는 티켓을 손에 쥔 것처럼.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며칠에 나눠서 기쁘게 읽었다. 소설들의 도입부가 하나같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이미 지나간 관계나 기억을 회고하는 소설들이 많은데, 대부분 첫 문단에서 그 기억의 정경이 그려진다. 나뭇잎의 일렁임, 종로 거리의 풍경, 진홍빛 위스키. 첫 문단에서 ‘어..? 이 표현들 뭐지?’ 하다보면 다음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마음에 다가왔던 작품들은 ‘밤의 물고기들’, ‘우리는 같은 곳에서’, ‘휘는 빛’ 이렇게 세 편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천천히 걷다가 잠깐 우뚝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이들 같다. 그 사람을 만났던 초 여름 저녁을 떠올리고, 아내와 과거 아주 잠깐 연인이었던 영지의 집으로 차를 몰고 가던 날을 떠올리고, 지우지 않은 글을 발견하고 과거 직장 동료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생애 가장 강렬한 기억은 아니나 문득 생각나는 조금 뜬금없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들라고 느꼈다. 독특했다.



작가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성별을 고민했다는, 그리고 소설들을 마무리한 지금은 더 이상 ‘나’의 성별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작가. 이후의 작품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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