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기다리는 여행
이동진 지음 / 트래블코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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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도시를 유랑하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첫번째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챙겨야만 하는 상황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기 위해서이고 두번째 이유는 매일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번뜩이는 영감을 얻고싶기 때문이다. 당장은 요원한 일이니 아쉬움을 삼키며 여행 책이라고 읽는다. ‘기대할 수 있었지만 계획할 수는 없었던‘ 여행지에서의 발견을 이야기하는 <생각이 기다리는 여행>이다.



저자의 이전 책들인 <퇴사준비생의 도쿄> 및 <퇴사준비생의 런던>에서 해당 지역의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다루고 있다면 이번 책에서는 도쿄, 타이베이, 발리, 런던,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여행에서 얻은 우연한 발견과 생각을 담고 있다. 책 속의 여러 장소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타이베이 징성위 플래그쉽 매장이다. 차 브랜드인 징성위는 펑리수 브랜드 써니힐즈와 협업하여 방문객에게 무료로 차 세 잔과 펑리수를 제공한다. 고객에게 아낌없이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제품의 패키지 안쪽에 원을 그려 적당한 찻잎의 양을 가늠할 수 있도록한 패키지 디자인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그런가하면 로스앤젤레스의 랄프스 매장에서 할인과 할인 이유를 함께 제공하는 전략도 재미있었다. 저자는 물 한 병을 사러 간 마트에서 할인의 이유를 디코딩하다가 한 시간 반이나 머물렀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나는 온전한 쉼을 위한 여행보다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한 여행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 또한 각양각색인 여섯 도시에서의 발견들을 읽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이 책에서 소개된 도시 한 두곳 쯤은 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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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리커버 에디션) 옥타비아 버틀러 리커버 컬렉션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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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어둡고 축축하지만 말미에 이르러서는 빛의 온기를 느끼게 되는 소설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백인 남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젠더가 존재하며 심지어는 인간조차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안도감이 든다. 특히 각 소설들마다 집필 경위를 설명한 작가의 말이 있어 좋았다. 불필요한 오독을 막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일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표제작 ‘블러드 차일드‘다. 외계 생명체의 생명 존속을 위해 숙주가 되는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다.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의 분위기는 조금은 잔인하고 혼란스럽다. 현실 속 가부장제와 여성에게 일임되는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풍자한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특사‘도 꽤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지구를 식민화한 외계 존재와의 중간자적 역할을 맡게된 노아가 일자리를 구하는 인간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다. 노아는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인간들을 실험하는 외계 존재와 다 알면서도 같은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인간종에 대해 말한다. 역시 인간이 가장 잔인한가.



이 책에는 두 편의 에세이가 함께 실려있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작가 지망생이었던 시절을 회고하며, 또 출판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쓴 글들이다. 앞에 수록된 소설들 만큼이나 꼼꼼하게 읽을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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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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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켄 리우의 소설집. 매혹적인 표지와 제목이 돋보이는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미출간 단편 열 두편을 한 권의 단행본에 묶어낸 한국판 오리지널 소설집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단 맨 처음에 실려있는 다정하고 긴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과학 소설은 지금 이 순간의 현실에 현미경을 가져다 대는 것’이라는 말, 그리고 자신은 결국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라는 말. 그가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결국 누구도 아닌 자기 자기만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라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호(弧)’와 ‘내 어머니의 기억’이다. ‘호(弧)’에서는 미혼모였던 주인공이 시신을 재료로 인체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다가 영생을 얻는다. 늙지 않는 것과 죽지 않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꿈이지만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내 어머니의 기억’은 살 날이 2년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7년 주기로 방문하며 딸의 평생을 지켜보는 이야기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극중극으로 소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작가 켄 리우. 그의 한국판 단편집 두 권이 내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중이라고 하니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볼 만 하다.



(*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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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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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다려왔던 바로 그 책. 18명의 기혼 무자녀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책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가감없이 적혀있는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와 함께 필독서로 권장되어야할 책이다. 특히 미혼/무자녀 여성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한 생명체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임신과 출산 경험의 위험성 때문에 등등. 하지만 이들이 겪는 오지랖은 왜 하나같이 똑같은지! 아이를 낳으면 책임져줄 것도 아닌 타인들이 더 유난이다. 숨이 막힌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들에게 만약 남성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다. 아직까지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여성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결정해야한다. 그게 당연하다.



유자녀 여성에게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쉽게 묻지 않듯이 무자녀 여성에게도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라고 캐묻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임신과 육아는 여성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만 위의 질문들은 주로 여성에게 가해진다. 놀랍지도 않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자녀가 있든 없든 개인의 선택이니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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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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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마지막 소설 <쇼리>가 드디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무려 뱀파이어물이다. 주인공은 쇼리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흑인 여자아이로, 그녀가 기억을 잃은 채 동굴에서 깨어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론 쇼리는 뱀파이어다. (소설 속에서는 ‘이나’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소설 속 뱀파이어들이 젠더와 인종의 평등을 추구한다는데에 있다. 일단 주인공 쇼리만 해도 흑인이며 인간의 피가 절반 섞여있다. 기존 뱀파이어 설화의 통념과는 달리 소설 속 뱀파이어들은 인간들과 공생관계를 맺고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인간들은 그들도 원할 경우 뱀파이어의 공생인이 되어 피를 빨리는 대신 쾌락과 수명 연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까 뱀파이어와 인간은 일대 다수의 폴리아모리 관계를 가지는 셈이다! 이들의 유대는 강하고 절대적이며 에로틱하다.



물론 이 소설에도 장애물은 있다. 슬프게도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결국 주인공 쇼리가 차별과 혐오를 딛고(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성장소설인 셈이다. 걸친 것도 없이 자기자신밖에 없었던 쇼리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감탄스럽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쇼리>의 뒷이야기를 영영 읽을 수 없다는 것. 몇몇 오탈자 및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아쉽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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