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방 - 박정민 천우희 안재홍 변요한 이제훈 주지훈 김남길 유태오 오정세 고두심 자기만의 방
정시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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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천우희, 안재홍, 변요한, 이제훈, 주지훈, 김남길, 유태오, 오정세, 고두심 배우의 인터뷰가 담긴 <배우의 방>. 배우가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곳, 배우의 공간에서 진행된 인터뷰. 열 명 배우들의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 자체로서의 모습들이 보여 읽는 내내 즐거웠다. 유명 배우들도 모두 나와 다를 것 없이 똑같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상처받고, 나아간다. 이런 마음들이 인터뷰 속에 포장없이 솔직하고 투명하게 담겨있어 좋았다.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다. SNS 활동을 계속할수록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는게 어렵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당연히 그 둘 사이의 간극이 없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이 최상책이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어렵다. 인터뷰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졌던 건, 배우들이 모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는 것. 어쩔 수 없다는게 나쁜게 아니니 받아들이자는 천우희 배우의 말, 나를 솔직하게 오픈해서 이야기하는게 좋다는 이제훈 배우의 말, 머리를 굴려서 얻어낼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 솔직해져야한다는 주지훈 배우의 말 등등. 가짜 속에서 진짜를 끌어내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말이라 더욱 와닿았다.

나는 아직 업을 찾지 못한 상태, 그러니까 첫번째 산에조차 도착하지 못한 상태라 열 명 배우들의 이야기가 두번째 산으로 가고있는 선배들의 이야기처럼 들렸다.(*데이비드 브룩스는 첫번째 산은 커리어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삶의 방식이고, 두번째 산은 타인과 함께하고 나누는 삶의 방식이라 이야기한다. 적고나니 첫번째 산과 두번째 산을 합쳐서 넘어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엇이든 빠르게 정하고 싶어하는 나는, 영화를 자신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하는 이제훈 배우의 말이 내심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나의 업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얻는게 있겠지. 더 이상 조급하거나 불안하지는 않다.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니까(주지훈 배우의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는 결국 한 사람의 생을 끌어내는 작업이기에,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스스로에게 던질 좋은 질문들을 꽤 건져냈다는 점에서도 만족스러웠던 책, <배우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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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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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감 넘치는 호러소설 <엘크 머리를 한 여자>. 죄의식과 복수, 대물림되는 폭력의 고리를 다루고 있다.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독자를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이렇다. 네 명의 원주민 청년들이 금지 구역으로 엘크 사냥을 떠난다. 문제는 상황이 순식간에 꼬여 단순한 사냥이 처형의 현장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 사건은 청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의식을 심어준다. 죄는 씻겨질 수 있는가? 어떻게? 10년 뒤, ‘엘크 머리를 한 여자‘가 네 명의 원주민 청년들에게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피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소설의 전개는 끊임없이 독자의 관념을 뒤흔든다. 환상인지 실재인지 모를 ‘엘크 머리를 한 여자‘도 독특하지만, 서술 관점의 변화야말로 흥미로운 포인트다. 소설의 중반부부터 ‘엘크 머리를 한 여자‘가 ‘너‘로 지칭되며 서술의 관점이 뒤바뀌는데, 이때부터 독자는 원하든 말든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가파르게 진행되는 전개 덕에 그야말로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한 줄 한 줄 읽게 되는 것. ‘이 이야기 대체 뭐지?‘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속수무책으로 빨려들게 되는 소설. 구성이 참 영리하고 치밀하다.



그런가하면 소설 속에 드러난 현대 원주민들의 문화적 정체성도 주목할만한 요소다. 네 명의 청년들 중 두 명은 원주민 보호 구역을 떠나고, 나머지 두 명은 남는데, 백인 사회에 섞이고자 하면서도 원주민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이 교차된다. 주인공들이 ‘엘크 머리를 한 여자‘와 마주하며 겪는 감정적 동요는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겪는 존재론적 동요로 치환될 수 있다. 호러 소설이라는 표면적 층위를 따라 읽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지만, 그 이면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읽을 때 한층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이것저것 차치하고,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읽었을 때 오싹함의 절정을 느낄 수 있는 호러 스릴러 소설. 다소 잔인함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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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지음, 한유주 옮김 / 마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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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데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수는 없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점에서 들춰보고는 계속 아른거리는 바람에 다음날 다시 서점으로 달려가 사온 책. 회고록과 소설을 써온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 글쓰기에 대한,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책이다. 작법서는 아니고 회고록에 가깝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된다. 내면에 풀리지 않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작가가 된다. 저자의 문장은 굽이굽이 흐르는 물살같다. 내면의 무언가를 부드럽게 일깨워준다. 너에게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 않아? 네 깊숙한 곳이 숨어있는 그 작은 열망 말이야, 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인내심‘이었다. 저자의 글쓰기 수업에서 작가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제자가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에이전시와 계약하려는 걸 보고 기다려야한다고 조언했다던 이야기. 그런데 조급함에 자신을 내어준 제자는 결국 계약을 해버렸고 지지부진한 집필 과정을 거쳐 첫 작품은 완성했지만 금방 잊혀져버렸다는 이야기. 이후 그 제자가 다시 책을 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동료의 계약 소식을 듣고 덩달아 조급함과 패배감에 시달렸던 또 다른 제자들 중에서 그저 묵묵히 글을 썼던 이들만이 지금까지도 작가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 글쓰기는 무언가를 빨리 이루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빌어 작품을 완성할때까지 기다리라고, 내면으로 들어가 문장을 길어내라고, 다만 수행자의 자세로 꾸준히 쓰라고 말한다. 계속 쓰는 사람만이 작가다.



글쓰기와 창작 관련해 읽은 책들 중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빅매직>과 더불어 두고두고 꺼내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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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가 읽은 작가들 버지니아 울프 전집 14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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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황홀했다. 독자로서 버지니아 울프가 가진 예리한 시선과 통찰력, 문학에 대한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책 <울프가 읽은 작가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 에세이가 실려있는 솔 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전집 마지막 권이다.



책 속에는 그리스 고전부터 18,19세기의 희곡, 에세이,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헨리 제임스를 비롯한 작가들도 몇몇 눈에 띄고, 이름만 겨우 들어본 작가들도 제법 있다. 그러나 책 속에 나오는 작품이나 작가를 잘 모른다고 해서 울프의 문장을 탐험하는데에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울프가 마치 그 작품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세밀하고 풍부한 묘사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그의 문장을 따라 읽는것 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그걸 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울프가 작품 한 편 한 편을 얼마나 예민하게 읽어내는 독자인지! 그는 작품 면면에 흐르는 아주 미묘한 느낌까지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작가가 있는 그대로를 망설임 없이 드러내는지 아니면 가장 중요한 것은 두루뭉술하게 감추고 있는지까지. 이러한 비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울프가 가진 문학에 대한 애정이다. 울프가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작품의 표면과 본질을 동시에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만약 내가 울프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작가였다면 다른 모든 사람을 제치고 그녀의 평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내 삶과 내 작품을 이토록 정확하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단 한 명이 있다면 아마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으리라.



내가 가진 모든 정체성들 중에서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건 독자로서의 나다. 현학적인 문장으로 가득한 인문서든, 누군가는 삼류소설이라 말하는 칙릿이든, 어마어마한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든 책을 펼쳐들고 종이 속에 나를 완전히 내맡기는 순간 나는 삶을 무한히 다시 살아낼 수 있으니까. 그리스 고전을 읽으며 굳건한 인간의 원형을 발견해내고, 제인 오스틴의 끝내주는 균형감각에 감탄하고, 러시아 소설의 이질성에 혼란스러워하다가도 매혹되어버리고 마는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책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한 독자의 초상을.



결국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끝내주는 소설을 한 권 읽고 싶다는 열망이다. 현실 세계 속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완전히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고 싶다. 그저 순수함으로 가득한 독서를 해야한다고,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하는 질문에 있어서 자신의 본능을 따르고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해야한다고, 울프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울프가 읽은 작가들>은 같은 독서가라면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독서에 너무나 진심이었던 어느 한 독서가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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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스 랩 -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론 M. 버크먼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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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백지 앞에서 머리가 하얗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을 써야하지? 어떻게하면 잘 쓸 수 있지? 그럴 땐 괜히 옆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거나, 영감의 신이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라며 빈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창작의 비밀이 있다면 제발 좀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연극, 그림, 건축.. 멋진 작품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건지, 50여명의 크리에이터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창조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메이커스 랩>.



자, 그래서 창작의 비밀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가, 디자이너, 건축가, 연주자 등 여러 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따르면 그 비밀은 놀랍게도 ‘만들면서 알게된다‘는 것이다! 작품을 시작하기에 앞서 불안이나 두려움, 막막함을 겪는 것은 유명한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자신이 무엇을 창조해내고 있는지는 일단 만들면서 알게 된다. 인터뷰이들은 글을 쓰면서, 디자인을 스케치하면서,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창작활동을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전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알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순서가 틀렸다.



책 속에는 창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한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앎과 패턴을 지우고 모호하고 불확실한 모름의 상태를 견디는 것이다. 단순한 스케치를 계속하면서 손을 움직이다보면 아이디어가 흘러들어온다고 말하는 작가도 있고, 가면을 통해 습관화된 표현 방식을 억제하면서 몸에서 자유로운 표현이 나오는 방식으로 연습을 한다는 배우도 있다. 결국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알기 위해서는 일단 경험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의 창조자다. 삶에서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경험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준다.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은 만들어낼 수 없으므로. 그러니까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창작해내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창작의 비밀은 우리 자신 그 자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 만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백지가 전만큼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하다. 지난한 과정을 지나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해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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