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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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으니까, 살아라.’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하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건지도 모르지. 그 사람이 있으니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누구에게든 필요해. 살아가기 위해, 마음에 두고두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그런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군. 타자가 없는 곳에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인생은 타자라고. (325P)

동명의 영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소설이 원작인 줄은 몰랐다. 찾아보니 니시카와 미와는 자신이 쓴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각본을 소설화하기도 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라고. <아주 긴 변명>의 경우에는 책이 2015년에 출간되었고 영화가 2016년에 개봉되었다.

소설가 사치오가 버스 사고로 아내를 잃게 되지만 그간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인지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은 요이치를 만나게 되고, 잠깐동안 아이들을 봐주기로 하면서 그들 가족 틈에 스며들게 된다. 소설은 이러한 '긴 변명'을 지나 사치오가 아내 나쓰코에게 쓰는 편지로 끝난다.

나의 경우: 결국 사람이 사람을 구원한다는 말, 믿지 않았었다. 그 말을 믿게 되면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줄까봐, 또 너무 많이 의지하게 될까봐. 하지만 그저 옆에 존재하는 사람의 따뜻함 만으로도, 그러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한결 숨통이 트인다는 것을 배웠다.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돌아보니 그들의 존재가 나를 살게 해주고 있었다. 사치오에게도 요이치 가족과의 만남이 그런 순간이었으리라.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흐름, 섬세한 감정묘사, 다양한 가족 형태, 사랑, 사람. 가볍고 잔잔할거라는 나의 짐작을 뒤엎고 생각보다 큰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동명의 영화도 궁금해지는데, 부디 좋은 작품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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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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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의 미카엘>


‘나는 그저 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듯이.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허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난 실재예요, 미카엘. 그저 당신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니라고요.(2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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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도망쳐,를 수백번 되뇌였다. 그녀가 겪는 불안의 원인이 오직 미카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나가 조금 더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졌다면. 게다가 우울과 히스테리는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을. (젤다 피츠제럴드의 경우처럼 한나 또한 병증이 과대진단된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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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표지에 작가 사진이 등짝만하게 들어간 것이 조금 무섭게 느껴진다. <사양>처럼 석양이 들어간 표지도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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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복종
나오미 앨더만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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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예요. 파인골드 박사는 말했다. 하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은 구원할 수 있다는 얘기죠. (3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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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보수적인 유대인 마을 햄든. 일찌감치 그곳을 벗어난 로닛이 마을의 존경받는 랍비였던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햄든으로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닛은 뉴욕 금융계에서 일하는 레즈비언 여성으로 유대교의 규율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나, 여전히 그녀의 일부는 햄든에 남아있음이 드러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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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맥아담스와 레이첼 와이즈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된 이 소설은 나오미 앨더만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유대교 및 그 관습들이 생경한 내게는 다른 문화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제는 굴레가 되어버린 종교와 전통, 그리고 그것에 불복종하기를 선택한 로닛. 햄든에 남아있는 그녀의 어린시절 연인이었던 에스티와 사촌 도비드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모순을 해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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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운 자기와 더 나은 세계를 모색하는 모든 ‘불순종하는’이들을 위한’ 소설. 개인적으로 그다지 통쾌한 결말은 아니었으나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선택을 하는 것 또한 자유의 일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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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피 - 익숙하고 낯선 생리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엘리즈 티에보 지음, 김자연 옮김 / 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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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생리를 하기 때문에, 생리는 금기시되는 대상이기 때문에, 남성들이라면 절대 아무도 겪지 않을 형태의 억압을 여성들은 참아내야만 한다. 생리혈이 금기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수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치유책 없이 고통받고 있다.’(15p)

여전히 왜 여성들이 매달 생리를 하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는 사실, 생리컵은 2016년에서야 슈퍼마켓에 등장했다는 사실(유럽 기준)은 경악스럽다. 또한 ‘초경을 맞은 여자아이에게 ‘이제 여자가 되었다’며 축하를 하는 건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떠벌리며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여자아이들에 대한 폭력’이라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생리용품이 화장실마다 보급되어있지 않은 것, 하물며 대부분의 생리용품의 성분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은 놀라움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고통 뿐인 생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왜 여성들은 생리 전후에, 생리중에 그토록 고통받아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고통을 절감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사실은(...) 굉장히 유감스럽다. 생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부터 미처 몰랐던 사실까지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는 이 책 <이것은 나의 피>. 나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 권리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다! 으레 그런 것이려니 받아들였던 생리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무언가를 아는 기쁨이란 바로 이 책을 읽을 때 같은 경우를 뜻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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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 - 앤드루 숀 그리어 장편소설
앤드루 숀 그리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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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코미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도 공연도 아주 무겁고 진득하고 어두운 이야기가 좋다. 그러나! 앤드루 숀 그리어의 <레스>는 한 편의 이야기가 가볍고 재미있으면서도 교훈을 줄 수 있고, 심지어 인권 감수성에 대해서도 탁월하게 다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50살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작가 아서 레스는 오랫동안 만났던 젊은 연인 프레디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계 여행을 떠난다. 결혼식에 가지 않으려고 일부터 온갖 스케줄을 끼워 여행을 하는 이 괴상한 인물 레스는 사실 조금 귀엽다. '바보 사랑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사람이 쓴 글이 얼마나 말랑말랑할지 눈에 선하다. 그러니까, <레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아서 레스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내 요점은 빌어먹을 인생에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거야. 쉰 살은 아무것도 아니야. 난 쉰 살 때를 돌아보면, 씨발 뭘 그렇게 걱정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날 봐. 나는 저승에 있어. 가서 즐겨." (297p)

본인은 단순히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여정이었을지 모르나, 레스는 그 도중에 문학상을 타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은 49살 아서 레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아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뭐든 건져갈 수 있다. 웃음이든 교훈이든 사랑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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