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고 - 피나, 당신의 카페 뮐러 활자에 잠긴 시
안희연 지음, 윤예지 그림 / 알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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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과 윤예지 일러스트레이터가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 바우쉬와 만났다. 시인은 글을 쓰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을 그린다. 알마 출판사의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장르의 경계를 너머 시와 그림으로 쓴 산문‘. 얼마전 안희연 시인의 에세이를 꽤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주저없이 골랐다.



사실 나는 피나 바우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는 오랫동안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고, 그녀의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될 때마다 한 발짝씩 늦게 알게되는 바람에 작품도 본 적이 없다. 무수히 많은 말들로만 들어왔을 뿐. 이 책을 읽기 위해서 <피나>를 봐야 하나 며칠 고민했는데 그냥 영화 <그녀에게> 도입부에 나오는 ‘카페 뮐러‘를 감상하는 것으로 갈무리했다. 안희연, 윤예지 두 작가가 그려내는 피나 바우쉬를 읽고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변명)



시인은 중간중간 피나 바우쉬에게 편지를 보낸다. 걱정과 불안, 고민거리에 대해서. 이에 대해 피나는 단호하고 조금은 엉뚱한 답변을 내려줄 것만 같다. ‘나를 열어 바닥까지 휘젓는‘그런 답변.



알마 출판사의 ‘활자에 잠긴 시‘ 시리즈는 둥근 모서리에 감각적인 일러스트작품이 함께 들어있어 마치 한 권의 작품 같다. 예술가들이 또 다른 예술가에게 마치는 연서를 몰래 읽는 느낌이다. 다음 권에서는 어떤 예술가들의 만남을 보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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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즐겨읽지만 굳이 가장 손이 가지 않는 책을 고르자면 그림책인 것 같다.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생각해보니 내 손으로 그림책을 사 본 적도 없다. 아무래도 내가 책을 ‘활자로 적힌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것이 이 두 권의 책이다. 복합문화예술공간인 맨션나인에서 발간한 ‘현대 미술을 가지고 노는 그림책 시리즈‘. 오수지 작가의 그림이 실린 <오늘은 무엇을 먹나요>와 임보영 작가의 그림이 실린 <괜찮아 정원>. 이 책들은 단순한 그림책을 넘어 작가의 도록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책을 펼쳤을 때 이야기보다도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는지도. 줄글로 된 이야기를 재빨리 읽어치우기에 바쁜 내가 천천히 그림을 뜯어보며 책을 읽기는 처음이다.



‘작가의 도록을 그림책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온 두 권의 책. 그래서인지 하나의 이야기로 쭉 이어진다기보다는 각 작품 작품마다 캡션이 달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이야기 자체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작품 각각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책 선물을 받으니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어쩌면 그림책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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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있나이다 1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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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꾼이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단 두 작품으로 미국 문학계의 신동이 된 그가 11년만에 써낸 장편소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온 유대인 가족을 4대에 걸쳐 그려내는 소설이다.



도서관측의 정리 실수로 2권을 함께 빌려오지 못해 일단 1권만 읽은 상태다. 뭐랄까. 포어는 오직 소설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짓는다. 특히 미국에서 유대인으로 살고 있는 가장 제이콥을 중심으로 민족, 가족, 남편, 아버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표현들은 날카롭고 신랄하지만 제이콥 가족을 둘러싼 사건들(이스라엘에서의 지진, 가족의 죽음, 외도 등)은 폭포처럼 연신 쏟아져내린다.



왜 사람들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등장을 두고 ‘제 2의 필립 로스가 나타났다‘고 말했는지 알겠다. 내게는 로스의 글이 더 치밀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크고 작은 정체성의 문제를 거침없이 문장에 녹여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능력은 두 작가 모두 독보적으로 뛰어나다.



제목 선정부터가 미쳤다. 2권을 마저 읽어야 정리가 될 것 같다. 대단한 작품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다(Here I am)’

_창세기 22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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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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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아무리 뒤져도 마음에 드는 책이 없을 때 내가 찾는 작가가 몇 명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번역된 작품을 전부 읽지 않은 나만의 보물같은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그중 하나다. <책을 읽어주는 남자>로 국내외에 잘 알려져있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에 녹아있는 철학과 서정. 지금까지 읽어본 슐링크의 거의 모든 작품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올가>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때 당연히, 최대한 빨리, 읽고싶었다.



역자 후기에도 나와있듯 <올가>는 단연 <책을 읽어주는 남자>의 연장선상 혹은 또 다른 면에 있는 듯하다. 아마 <책을 읽어주는 남자>를 인상깊게 읽은 독자라면 <올가>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세계 양차대전 시기를 중심으로 올가라는 여성이 주축이 되어 그녀를 스쳐지나갔던 헤르베르트, 아이크, 페르디난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 페르디난트의 1인칭 관찰자 시점, 올가의 편지 이렇게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단연 마지막 챕터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반전 아닌 반전도 숨겨져 있다.



올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명민하게 자기 자신과 주변 상황을 파악할 줄 아는 여성이다. 비록 그녀 평생의 연인 헤르베르트는 끊임없이 여행을 떠났다 그돌아오기를 반복하더니 영영 실종되어버리고 말지만. 올가가 그런 헤르베르트를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음이 놀랍고, 그럼에도 그를 끝까지 사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올가의 단단한 마음은 <책을 읽어주는 남자> 속 한나와 겹쳐진다.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그 안의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여전히 대단하다.



역시 배반하지 않는 베른하르트 슐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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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여자
민카 켄트 지음, 나현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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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된 딸 그레이스를 지켜보기 위해 그들 가족의 뒷집에 사는 오텀. 그녀는 겉으로 완벽해보이는 그 가족에 가까이 가기 위해 아이 돌보미로 지원하기까지 한다. 그러던 와중 그 가족의 남편 그레이엄과 몇 년간 만난 내연녀 마르니가 살해된다.



강렬한 표지와 가정 심리 스릴러 소설이 읽고싶어 선택한 <훔쳐보는 여자>. 여름에는 역시 뜨거운 로맨스 아니면 서늘한 스릴러다. 이 소설은 후자로 예기치 못한 반전까지 선사한다.



가족이란, 결혼생활이란 무엇일까? 오텀의 불행한 어린시절과 딸을 입양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 방탕한 마르니, 바람을 피우는 그레이엄, 완벽한 아내인척하지만 곪아가고있는 대프니. 사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레이엄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부여한 ‘완벽한 남편이자 아빠, 가장’이라는 역할의 무게에 심취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그. 자신의 문제를 문제라고 인정하지도 못하는 인물. 참 답답하다. 대프니에게 잘보이기 위해 설거지 몇 번 하고 뿌듯해하는 꼴이라니. 그가 마구 망가지기를 바랐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해 아쉽다.



몇몇 설정이 다소 짜맞춰진듯한 느낌은 있지만 나쁘지 않다. 아이를 입양보낸 오텀과 세 아이를 키우며 완벽한 엄마를 연기하는 대프니의 시선이 번갈아가며 나타나 꽤 재미있다. 책을 덮을 즈음엔 결혼 자체가 스릴러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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