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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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은 <디자인의 디자인>에 이어 후속작인 <내일의 디자인>도 읽어보았다. 전작에서는 저자의 디자인론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근미래에 어떻게 디자인을 해나갈 수 있을지 저자의 비전이 드러나있다. 주거, 관광, 섬유 등의 구체적인 분야가 언급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 책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저자의 뚜려한 가치관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디자인의 본질은 억제, 존엄, 가치관에 있다'라던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가 일본 섬유 산업의 미래를 논하며 패션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패션지에서 아우라를 발산하는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볼 때, 패션이 '인생의 예술'임을 실감한다고 고백한다. 인간으로서의 결함을 모두 끌어안으면서도 당당한 이에게는 '고목이 자아내는 것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 인간에게는 품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그 뒤에는 섬유 산업에서의 디자인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이어진다.

다만 저자가 일본의 디자인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는 만큼 책의 내용이 일본의 역사와 미의식에 한정되어 있다. 편견 없이 읽는다면 앞으로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거시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고 난 뒤에 아시아권의 문화를 배우는 식으로 넓혀나가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테니. 이 작업은 나를 알아가는 것(즉,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 공부는 근미래에는 각 나라 혹은 각 지역의 전통 문화가 중요해질거라는 저자의 견해를 곱씹어보더라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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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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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자문위원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하라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그가 참여했던 리디자인 전시, 무인양품 기획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까지 그의 디자인관이 차곡차곡 담겨있는 책이다.



하라 켄야에 따르면 디자인이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오감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과 ‘기존의 역할을 미지화하는 것‘ 또한 디자인에 속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테크놀로지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디자인적인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업에서는 고객의 욕망을 사로잡기 위해 마케팅과 디자인에 점점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역시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라 켄야가 기획한 ‘종이와 디자인‘ 전시 이야기였다. 최근 정보 기술의 진화로 미디어로서의 종이는 그 주역에서 내려와 본래의 ‘종이‘라는 물질성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이북 및 온라인 구독 서비스 시장의 성장으로 종이책은 점점 프리미엄화 될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추측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정보를 담은 미디어성보다는 종이의 물성을 살리는 책. 미래가 기대된다.



디자인, 생활 속 미의식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과 매거진B 시리즈를 병행하고 있는데, 이 책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다. 디자인의 다양성과 역할 그리고 브랜딩에서의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두 콘텐츠 모두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라 켄야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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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호 세대 인문 잡지 한편 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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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문잡지 한편 1호 ‘세대‘를 드디어 읽어보았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잡지다. 한가지 주제를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글의 호흡이 간결하고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을만큼 글의 길이와 호흡이 간결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창간호의 주제는 ‘세대‘다. 세대란 무엇인지, 왜 세대 담론이 화두가 되고 있는지부터 밀레니얼 세대와 페미니즘, 탈코르셋, 중국 및 베트남의 청년세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세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일단 박동수의 ‘페미니즘 세대 선언‘을 시작으로 정혜선의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로 끝맺는 순서가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어느 나라나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 기후문제의 심각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지 아쉬움도 있었다. 주제인 ‘세대‘를 중심으로한 글들의 방향이나 교차성은 만족스러우나 너무 기본적인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청년 문제나 페미니즘의 경우 평소에도 관심있게 찾아보던터라 익숙한 내용이 많아서 더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잡지의 목표가 ‘학자들을 연결해 개념의 지도‘를 그리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만큼, 더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잡지를 읽고 관심이 가는 분야는 스스로 찾아볼 수도 있을테다. 실제로 잡지를 읽으며 몇 편의 글에서 동시에 언급되는 책들은 읽어봐지 싶었다. 특히 기후문제에 관해서는 필히 더 알아봐야지 다짐하기도 했고.





어쨌든 인문잡지의 등장이 반갑다. 구독의 시대인만큼, 함께 읽을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좋았고. 이번 달에 출간될 2호 ‘인플루언서‘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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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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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좋아하기 힘든 주인공을 끝끝내 독자의 마음이 기울도록 그려내는 오테사 모시페그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돋보이는 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주인공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특권층 미모의 늘씬한 금발 여성이다.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지독한 무기력증과 염세를 느끼는 주인공은 온갖 약물에 의지해 기수면상태를 이어가다가 인페르미테롤이라는 시판되지 않은 약을 접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이 약을 먹으면 사흘간 의식이 사라진다! 주인공은 남은 인페르미테롤이 허락하는 만큼 스스로를 집 안에 격리시키며 잠을 자기로 결정한다.



언젠가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못견디는 사람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휴일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독서나 영화, 드라마 감상같은 것도 사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라 온전히 쉰다고 보기는 어렵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깨달음 이후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휴식이란 긴 수면과 식사, 산책 정도로 꾸려진 간결한 시간이다. 그냥 존재하는 시간.



주인공의 선택은 극단적이지만 매혹적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잊고 잠시 의식의 스위치를 꺼두는 일. 봄을 준비하듯 오래 겨울잠을 자는 일. 어쩌면 주인공이 선택한 잠도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재정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휴식이었다고 말할 수도, 주인공의 행동은 회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온전한 휴식을 바라지 않나. 그 상상을 주인공이 대신해서 실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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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 동서양을 호령한 예술의 칭기즈칸 클래식 클라우드 18
남정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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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내가 백남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이게 전부다. 어렸을 때 국립현대박물관 과천관에서 ‘다다익선‘을 보고 참 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실제로 백남준이 국내에 알려진 것도 뉴욕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라고.) 그러던차에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백남준을 만나게되었다. 한국, 일본, 독일, 미국에 걸친 백남준의 궤적을 따라가보는 숨가쁘도록 알찬 여정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이 책은 백남준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문서로 제격이다. 저자는 백남준의 생애를 따라 한국, 일본, 독일, 미국 네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의 흔적을 살핀다. 특히 백남준이 케이지와 보이스를 만나 행위예술가로 거듭난 독일에서의 일들이 비교적 세세하게 적혀있다. 나처럼 백남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가 흥미의 실마리를 얻기에 충분한 책이다.



백남준은 한 권의 책으로는 담기 벅찬 인물인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일화들만 해도 범상치 않다. 열 네 살때 접한 쇤베르크의 음악에 매료되어 당시로서는 난해하기 그지없었던 음악세계를 탐구해나간 것, 이를 기반으로 파격적인 행위예술을 펼친 것, 플럭서스 운동, 비디오 아트 등등.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그가 선불교와 노장사상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원래 예술품은 즐거워야 하는거지, 내일이면 시시해져.‘라던 그의 말. 불과 수십년 전 그가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혁신적으로 드러낸 설치 작품들이 하나 둘 고장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그때 당시에도 이미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 밖에 1990년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난 요제프 보이스를 기리기 위해 했던 진혼굿 퍼포먼스 이야기도 충격적이었고. 그가 광적인 독서가였다는 사실도 뇌리에 남는다.



2006년 세상을 떠난 백남준. 이 책을 읽고 나니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그의 세계가 더 궁금해진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자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사실은 자명하겠고, 이제 그의 작품을 만난다면 전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덧. 작년 서울경제에 연재된 칼럼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시리즈도 함께 읽으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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