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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ㅣ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우리 솔이 오늘도 이야기가 듣고 싶구나?”
“네! 할아버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요.”
그래, 그럼 오늘은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마. 옛날에 아주 오랜 옛날에 어느 마을에 “사과나무”가 살았단다. 가을이면 탐스러운 사과가 아주 많이 열리는 나무였지. 그 나무에게는 아주 친한 단짝이 있었어. 나무는 그 아이를 “소년”이라고 불렀지. 아직 어렸으니까 말이야. 나무는 소년이 무척 사랑스러웠어. 소년 또한 나무를 타고 노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지. 그래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나무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았단다. 나무는 소년을 기다리는 것이 살아가는 기쁨이 되어 버렸지. 소년은 나무 둥치에다가 “나는 나무를 사랑해”라는 글씨와 함께 하트 모양을 새겼단다.
소년은 점점 자라서 이제 청년이 되었어. 예전과 다르게 소년의 발걸음이 뜸해졌어. 나무는 소년이 자기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고 조금 슬퍼졌단다. 어느 날 이제 청년이 되어버린 소년이 오는 데 혼자가 아니라 예쁜 아가씨와 함께 오는 거야. 나무는 오랜만에 오는 소년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한편 섭섭하기도 했어. 저 아가씨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가보다 생각했지만 소년의 마음을 다칠까봐 섭섭한 마음을 꾹 참기로 했단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이제 거의 오지 않았어. 지나가는 새들과 바람으로부터 소년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지. 나무는 소년이 무척 보고 싶었지만 걸을 수가 없기에 찾아가 보지도 못하고 가슴속에 그리움만 키웠지. 그러던 어느 날 이제 한 사람의 건장한 어른으로 성장한 소년이 오는 거야. 나무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어. 그런데 소년은 나무처럼 기쁜 것 같지는 않았어. 나무는 소년을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오래 머물게 하고 싶어서 소년이 원하는 것을 주기로 했어. 소년은 집을 살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무는 자신의 잘 익은 열매를 따다가 팔면 제법 돈이 될 것이라고 했어. 소년은 두 말하지 않고 나무의 열매를 모조리 따서 가져갔단다. 저런 고맙다는 인사말도 한 마디 없이 말이야. 하지만 나무는 소년이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지.
그렇게 또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년이 나무에게 왔어. 나무는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소년은 나무의 그런 기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이번에는 집을 지을 목재가 필요하다는 거야. 나무는 소년을 자기 곁에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두기 위해 자신의 가지를 내어 줄까생각해 봤지. 하지만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어. 왜냐하면 가지 없는 사과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사과나무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지. 더구나 가지를 다 베어 버리면 나무의 생명마저 위태로워진단다. 그리고 문득 새들이 날아와서 자신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도 생각이 났단다. 쉘 실버스타인이라는 작가가 사는 마을에 “아낌없니 주는 나무”가 살았는데 자기처럼 소년을 사랑했고 그를 조금이라도 자기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주고 그루터기만 남았다고 했어. 사과나무는 그루터기만 남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어. 왠지 슬퍼지고 결코 자신이 꿈꾸던 노후의 모습은 아니었단다. 소년의 요구를 거절하면 자기를 영영 떠나버릴 것 같아 두렵고 요구를 들어주면 자신의 불행에 빠지고 생명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 분명했어. 솔이야 네가 만약 나무라면 어떻게 하겠니?
“할아버지, 내가 사과나무라면 그 버르장머리 없는 소년 말고 다른 친구를 사귈 거예요.”
“오호, 그런 방법도 있겠구나. 하지만 누군가와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쉽게 끊을 수가 없단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끊는 것이 훨씬 고통스럽고 어렵거든”
“그래서 사과나무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래서 사과나무는 소년도 행복하고 자신도 행복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단다. 그리고 소년에게 제안을 했지. 지금 당장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내 가지를 베어 가라고 할 수 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조금밖에 이익을 얻을 수 없고 대신 소년이 조금만 도와주면 더 많은 사과를 생산하여 소년을 오랫동안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지. 그러자 소년이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어. ‘나에게 잘 숙성된 퇴비를 가져다가 듬뿍 주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서 병충해를 입지 않도록 돌봐다오’라고 나무가 말했단다. 소년도 그 정도 손익 계산을 할 수 있었지. 나무의 요청대로 소년은 정성껏 퇴비를 주고 병충해를 방비한 결과 그해 가을 평소보다 몇 배가 넘는 사과를 수확할 수 있었단다. 물론 소년은 그것을 팔아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었어.
그런데 어느 핸가 사과를 수확할 즈음에 태풍이 세차게 몰아쳐서 대부분의 사과가 떨어지고 20%정도만 달려있었는데 그마져도 상처투성이였단다. 나무는 소년이 실망하고 자기를 떠날까봐 몹시 두려웠지.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을 때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여주기 싫었단다. 그런데 그때 문득 철새들이 쉬면서 자기에게 들려준 일본의 아오모리현 사과나무 이야기가 떠올랐어. 나무는 다시 희망을 찾고 소년을 기다렸지. 그리고 이렇게 제안했단다. 얘야, 내게 남아 있는 사과를 따다가 ‘합격사과’라는 상표를 붙여서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팔아보렴. 소년은 나무의 제안대로 했고 그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들은 ‘합격사과’라는 이름을 달고 고가의 가격에 불티나게 팔렸단다.
“할아버지, 나무의 지혜가 참 놀라워요. 그런 지혜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예요?”
“하하, 궁금하지. 나무는 비록 여행을 할 수 없지만 바람과 새들과 곤충들로부터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듣는단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지혜를 배운 거지. 솔이야, 너도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렴. 그 이야기 속에 삶의 지혜가 들어있단다. 너는 사과나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느꼈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사과나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라 아끼며 주는 나무 같아요.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