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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1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36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평점 :
필자가 지도하는 <서사분석 실습과정> 수강생들과 천일야화를 읽고 토론했다. 그동안은 천일야화에 관한(about) 이런 저런 소문을 들었다면 이번 기회에 천일야화를 통과하여(through)보기로 했다. 함께 본문을 읽으며 구조를 분석하는 가운데 이야기 이면에 흐르는 삶의 철학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렸다. 천일야화는 이야기 이상의 삶에 대한 철학, 특히 이야기와 삶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발견한 내용들을 여기에 적어두고자 한다.
1. 부분이 전체의 구조를 반복하는 프렉탈 구조
자연세계에는 프렉탈 구조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눈송이의 모양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부분이 전체의 구조를 꼭 닮아 있다. 그 부분의 부분 또한 전체적인 구조를 무한히 반복하는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프렉탈 구조라고 부른다. 천일야화의 텍스트 구조는 프렉탈 구조를 닮아있다. 본문에서 일차적인 화자는 셰에라자드이고 1차적인 수화자는 동생 디나르자드이다. 물론 2차적인 수화자는 자신의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결혼한 후에 하룻밤을 자고 처형하는 샤리아 왕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왕과 결혼을 자처한 셰에라자드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왕의 마음을 변화시켜 제국의 뭇 처녀들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 또한 구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왕의 나쁜 결정에 대해서 직접 대놓고 훈계를 한다면 더 큰 반발을 사고 말 것이다. 셰에라자드는 지혜로운 여인이어서 직설적인 화법으로 왕을 설득하는 대신 이야기의 화자의 입을 빌려서 은근하게 자기 욕망을 표현한다. 그런데 셰에라자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의 운명 또한 꼭 자신을 닮아있다. 그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하여 죽음에 직면하는 데 그럴 때 마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위기에 처한 등장인물을 돕는 또 다른 화자들이 등장하여 자신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처형자의 마음을 돌이킨다. 이렇게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서너 겹 정도 깊이로 들어가면 하나의 서사 단위(클러스터)가 완성되고 다른 날에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2.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통한 설득전략
세상의 모든 여인을 불신하고 결혼한 다음날 아내를 처형하는 샤리아 왕과 셰에라자드는 자원하여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가 순교자가 되거나 다른 처녀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자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왕을 변화시킬 자신과 용기는 물론 치밀한 전략과 기술을 지닌 여인이다. 그녀는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셰에라자드는 왕과 결혼하면서 동생 디나르자드와 마지막 밤을 함께 지내고 싶다고 요청한다. 여인들에 대해서 마음이 굳게 닫힌 왕이었지만 왕비의 마지막 소원마저 물리칠 만큼 모질지는 않았다. 셰에라자드는 동생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나 맡기는데 새벽녘이 되면 먼저 일어나서 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하여 공식적인 수화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일야화는 다음과 같은 후렴구가 1001일동안 지속된다.
“이 대목에서 밝아 오기 시작한 아침의 빛은 셰에라자드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디나르자드뿐 아니라 샤리아게도 그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강한 욕망을 남겨 놓았다. 그래서 이 왕은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강한 욕망을 남겨 놓았다. 그래서 이 왕은 다음 밤에 계속하여 듣겠노라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디나르자드는 어제 시작한 이야기를 어서 듣고 싶은 마음에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나 왕비에게 말했다. ‘언니! 제발 부탁이에요! 만일 자고 있지 않으면 아무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 주세요.’ ‘곧 알게 될 거야!’ 셰에라자드가 대답했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그리고 즉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 이런 이야기의 구조를 만듦으로 인해서 샤리에 왕은 왕비인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직접 대면해서 듣는 대신 두 자매가 하는 이야기를 관객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바로 여기에 셰에라자드의 탁월한 지혜가 있는 것이다. 권위 있는 사람들일수록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왕비의 불륜을 목격하여 세상의 모든 여인들에 대해 철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샤리에 왕에게는 더욱 그렇다. 셰에라자드는 왕의 이러한 심리를 이미 꿰뚫어보고 간접적인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 왕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옛 속담처럼 누군가 천 날하고도 하룻밤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내면에서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바로 이점이 셰에라자드의 아버지와 그녀가 차별화 되는 점이기도 하다. 왕의 아내를 매일 구해다 주는 악역을 담당해야했던 대재상은 자신의 딸이 왕과 결혼하겠다고 자원했을 때 그녀를 설득하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딸의 마음을 전혀 돌이킬 수 없었다. 아예 너를 설득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전제하고 직접적인 대면관계에서 이야기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야기가 재미 있어도 대놓고 윽박지르는 용도로 활용한다면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셰에라자드의 전략은 효과가 있었을까? 갈랑의 <천일야화> 1936쪽(6권)에 보면 결말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술탄은 그의 아내 왕비의 놀라운 기억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르지 않는 기억의 샘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솟아나와 매일 밤 그로 하여금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천진한 오락을 즐기는 가운 어느덧 천 하루의 밤이 흘러갔다. 이 오락은 여인들의 정절에 대한 술탄의 고약한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정신은 몹시 온화해졌다. 이제 그는 셰에라자드가 얼마나 훌륭하고 지혜로운 여인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또한 그녀가 보여 준 용기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 다음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두 사람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옛 이야기의 결말과 같다.
3. 이야기가 곧 삶의 본질이다.
천일야화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야말로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임을 어떤 철학적인 사상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셰에라자드의 운명은 그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에 달려있다. 그처럼 많은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지어낼 수 있었을까? 본문은 두 가지 힌트를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첫째는 그녀가 대단한 독서가임을 알려준다. 동서양의 책을 서책을 두루두루 섭렵했다는 것이다. 즉 독서의 힘이다. 둘째는 그녀의 가정교육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아버지인 대재상이 셰에라자드를 설득하는 방법이 다름 아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본래 건강한 집안은 이야기가 풍성한 특징이 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 삶의 이야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모두 억울한 일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만 이야기 하는 능력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이다. 이는 셰에라자드 자신의 이야기 이자 오늘을 천일야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4. 주된 공간의 상징적 의미
천일야화의 공간을 살펴보자. 거지적인 관점에서는 페르시아 제국인데 구체적으로는 인도다. 왜 인도일까? 인도는 인류의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 그 신들에 얽힌 수 많은 신화들이 존재한다. 즉 이야기가 풍성한 나라이다. 오늘 날 헐리우드와 필적할 만한 곳이 발리우드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다시 인도에서 술탄이 거주하는 궁궐, 궁궐에서도 왕이 잠을 자는 침실로 좁혀진다. 만약 집이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상징한다면 침실은 무의식의 영역을 상징할 것이다. 의식의 세계는 자아와 초자아의 감시를 끊임없이 받기 때문에 강력한 자기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감추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표현해야한다. 하지만 침실은 그럴필요가 없는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이다. 옷을 입어도 되고 벗어도 괜찮다. 셰에라자드가 왕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선택한 공간이 바로 침실, 즉 왕의 무의식의 세계다.
샤리에 왕의 나쁜 습관을 변화시키는 데는 정치적인 접근도 있을 것이고 그를 시해하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데모를 하거나 국제적인 인권단체의 힘을 빌려서 압력을 넣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런 방법도 가능하겠으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영화 <인셉션>이 생각난다. 사람의 무의식에 접근하여 어떤 생각을 심는다는 내용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꿈의 세계로 들어가야한다. 꿈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다. 천 하루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밀한 침실에서, 완전히 방어기제를 해제하고 들었다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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