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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와 파리 ㅣ 열린어린이 그림책 4
메리 호위트 지음, 장경렬 옮김, 토니 디터리지 외 그림 / 열린어린이 / 2004년 11월
평점 :
독서치료를 하면서 누리는 축복가운데 하나가 동료상담자끼리 만나면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던 책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가운데 풍요로와진다는 것이다. 며칠전 독서치료 모임에서 한 동료가 <거미와 파리>라는 책을 가져왔다. 숯덩이처럼 까만 표지가 인상적이서 읽어주기를 청했는데 갑자기 음색이 변하더니 "파리아가씨....." 목소리가 어찌나 음산하게 들리던지. 낭독을 듣고 참여자들의 반응이 다채로웠다. 파리는 자신을 유혹해서 잡아먹으려는 거미의 속셈을 다 알면서도 외모를 칭찬하는 거미의 감언이설에 걸려들고 마는데 우리 모두가 몇 번은 경험했을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유괴범의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어른들 역시 텔레비전 홈쇼핑을 보면서 필요 없는 물건을 결국 사고 후회하는 것이 어쩌면 파리와 같이 느껴진다.
책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작가가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이미 잡아 먹혀 유령이 되어 떠도는 파리가 흐느적 그러며 돌아다니고 파리에게 자기 집은 안전하고 편안하고 멋진 침대도 있다고 꾀는데 거미의 거실 책장에는 <곤충요리>책이 표지도 선명하게 꽂혀있다. 거미의 집안에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는데 거미의 감언이설에 속으면 파리의 신세가 된다는 메시지를 은근하게 전해준다. 이 책의 색깔은 단 하나 검정색이다. 검정은 본래 어두움과 죽음을 상징하는 색이 아니던가. 검정색이 이처럼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이야기의 내용과 잘 어울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유혹앞에서 자신은 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거나 착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 속아도 자신은 속지 않는다면서 약장수의 쇼를 구경하는 사람(결국 약을 사게된다), 자신은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금융사기에 걸려드는 사람 등등. 하지만 머리의 언어와 가슴의 언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파리처럼 거미의 약은 수를 모두 알면서도 걸려들고 만다. 머리는 거미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경고를 하지만 칭찬에 굶주린 가슴은 거미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가라고 부추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성의 논리를 따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삼의 논리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거미와 파리>는 인간의 이러한 모순된 실존을 섬뜩하게 표현해준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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