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소나무 예술과 심리 동화 시리즈 1
윤세열 그림, 고희선 글 / 나한기획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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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올 해로 필자가 독서치료에 입문하여 활동한지 15년 째가 되었다. 그동안 좋은 책을 만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독서치료란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문제들, 특히 심리정서적 문제와 대인관계 문제, 부적응의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하도록 돕는 상담의 한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치료 상담자에게 가장 큰 자원이자 힘은 좋은 책을 발굴하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그림책의 세계에 입문하여 근 1000여권을 독파 한 것같고 500여편의 독후감을 쓰고 소그룹에서 200여권을 활용해 본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우리 나라에서도 심리치료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고도의 문학성을 갖춘 그림책이었다. 기다리던 보람이 있어서 지난 주간 저자로부터 이 책을 받고 많이 기뻤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심리치료용 그림책을 펴낼 계획이라니 더욱 반갑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상호 보완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독특한 서사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림책을 볼 때는 그림을 보고 글을 읽은 다음 둘을 통합시켜서 의미를 구성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또한 표지부터 시작하여 뒷표지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표지는 그 책에서 다룰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어떤 그림책의 경우에는 서지사항 위에서 결말을 짓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룹에서 그림책을 가지고 토론 할 때는 먼저 그림을 참고하면서 문자 부분을 읽은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그림을 관찰하도록 안내한다.
 
그럼 이제부터 필자와 함께 그림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우선 표지를 살펴보면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가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무엇인가 말을 건네는 장면이 보인다. 그런데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표정이 있고 제스처가 있다. 표정이 있는 이즈러진 달과 마주보면서 소녀를 감싸 안는 듯한 포즈를 취하면서 미소띤 얼굴로 뭔가 말을 걸고 있다. 그런데 빨간 원피스의 소녀와 소나무의 시선이 어긋나 있다. 둘이 함께 있지만 서로 소통되고 있는 모습은 아니다. 또한 그녀의 의상 역시 소나무의 동양화 같은 수수한 모습에 비해서 유채화 같이 입체감이 있고 선명한 모습이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 둘은 함께 있지만 충분히 소통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첫장을 넘기자 말하는 소나무가 초승달을 상대로 열심히 재잘거리는 모습이다. 다음 장에서 나무의 수다스런 모습의 원인을 문자 서서가 밝힌다. 나무는 세상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세상의 모든 비밀이라니. 그것을 말하고 싶어서 얼마나 입이 근질 거렸을지 짐작이 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에서 주인공 이발사처럼 임금님의 귀에 대한 비밀 한 가지만 알아도 말표 표현하지 못하면 병이 나는데 세상 비밀을 다 알고 있는 소나무는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나무는 말을 들어줄 상대, 즉 사람들이 찾아오면 자신의 말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이 장면은 나무의 슬픈 표정과 함께 나무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다리가 잔뜩 그려져 있다. 즉 스쳐가는 사람은 있어도 마주보고 소통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뜻을 전하는 것 같다. 아무리 말을 하고 싶어도 사람의 얼굴을 보며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소통이 되는 것이지 다리보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무는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잘 못된 것에 대한 증상은 사람들의 비난과 피상적인 관계와 외로움이다.
 
바로 그때 표지에 등장했던 빨간 원피스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 빨간 구두에 빨간색 루즈를 입술에 발랐다. 다행히도 소녀는 소나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재미있어하였다. 둘은 몇날 며칠 깔깔대고 웃으며 할 말이 다 떨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할 말이 다 떨어졌는데도 소나무와 소녀는 함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소나무의 내면에 깊고 깊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나무가 말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나무를 비나난하며 떠났던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무에게 와서 자신의 말을 털어놓고 안식을 얻고 치유되어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림책에 등장한 나무가 단 하나도 같은 표정이나 몸짓으로 그려지지 않았군요.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그려내려면 그림 작가가 나무라는 상징적인 인물에 완전히 몰입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쉘 실버 스타인의 "아낌 없이 주는 나무"의 표정을 보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그 나무와 이 나무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의 나무는 소년과의 관계에서 소년에 대한 자신의 태도, 즉 소통하는 방식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끝내 성찰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세월이 약이랄까요 소년도 더이상 나무에게 요구할 뭔가가 없고 나무도 자신의 늙은 밑둥 외에는 내어줄 것이 없을 때 둘은 함께 존재할 수 있었지요. 거기에는 소년도 나무도 문제에 대한 분석도 성찰도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습니다. 그저 상놈은 벼슬이 약이라고 세월이 해결해 주지요. 거기에 비해서 고희선님과 윤세열님의 나무는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나무입니다. 자신의 의사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지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까? "뭐가 문제지?, 사람들이 왜 날 싫어하지?" 그에 대한 대답을 소녀와의 관계에서 풀어냅니다.
 
저는 책을 가지고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 나무와 같은 성장의 단계를 거치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름 석자도 소개하기 힘들어 할 만큼 자존감이 무너지고 주눅들어 있던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힘이 자라나면 첫번째 징조가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눈물도 잘 흘립니다. 그러다가 더 성숙해 지만 눈물도 적어지고 말도 적어집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등장하는 나무는 한 사람의 상처받은 영혼이 무조건적이고 지지적인 관계를 통해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상징화 한 것 같습니다. 또 소녀는 상담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습니다. 좋은 상담자는 무엇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고(지지), 가슴으로 들어주는(공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상담자가 완벽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누구도 감히 상담자라고 칭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와 더불어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면에서 나무와 대화 상대를 여왕이나 임금, 혹은 뛰어난 학자, 중년의 성인으로 형상화 하지 않고 어린 소녀로 설정하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빨간 옷은 사람에 대한 열정, 성장에 대한 열정을 상징하려는 것이었을까요?
 
마지막으로 나무를 보면서 저는 무척 평안하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워낙 시골 깡촌 출신인데다 우리가 사는 고장은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요. 어린 시절 그림책에 묘사한 것 처럼 진짜 소나무 위에 올라가 놀고 소나무 밑에서 놀고 소나무에 소를 묶어놓고 놀고 소나무를 베어다가 성탄추리를 만들고 소나무의 잎사귀가 떨어지면 긇어다가 겨울에 불을 때면서 자랐답니다. 나무는 심리검사에서 아버지를 상징한다고 하지요 아마? 나도 그림책에 등장하는 소나무처럼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성숙을 도모하겠습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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