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를 올리고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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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사이에 여백이 있어야 그림책답게 된다. 글은 그림을 반복하지 않고 그림은 글을 반복하지 않아야한다. 고정순 작가의 <가드를 올리고>는 이런 그림책의 문법을 십분 잘 활용하여 그림책의 속성을 연구하는 데도 가치가있어 깊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책의 표지를 보면 가드를 올리고라는 제목과 함께 링 위에 한 사람이 가드를 올리고 서있다. 그런데 정작 글만 읽어보면 등산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극도로 절제된 문자서사는 시처럼 펼쳐 놓아도 한 쪽을 넘지 않는다. 우선 그림을 참고하지 말고 문자만 모아서 읽어보자.

 

산을 오른다.

처음에는 단박에 오를 것 같았지.

생각처럼 쉽지 않네.

좁은 길을 지나 골짜기를 넘어 커다란 바위를 만났어.

바위를 지나니 웅덩이

웅덩이를 넘으니 가파른 언덕

다른 길로 갈까?

그만 내려갈까?

조금만 더 가자.

바람이 불 때까지.

여기가 어디지?

나는 뭘 하는 거지?

올라갈 수 있을까?

더 이상 한 걸음도 못 걷겠어.

길을 잃었나봐.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산위에는 정말 바람이 불까?

바람이 분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영락없이 등산하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가드를 올린다. 아무도 없는 모퉁이에서 다시 가드를 올리고라는 마지막 두 문장이 없다면 말이다.


다음은 글을 참고하지 않고 그림서사 부분을 관찰해보자. 책표지에 가드를 단단히 올린 권투선수가 링 위에 등장한다. 빨간색의 글러브를 착용했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힘차게 주먹을 내지른다.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글러브의 색깔로 구별할 수 있다. 상대방의 펀치가 더 강하게 가슴을 때린다. 다시 기회를 보아 반격을 시도한다. 그의 주먹을 가볍게 피하며 상대방이 휘두른 주먹에 정통으로 턱을 얻어맞았다, ! 계속 얻어맞다가 다운을 당하고 만다. 다시 가드를 올리고 일어선다. 하지만 더 큰 주먹에 얼굴을 강타당하고 두 번째 다운! 비틀비틀 링의 줄을 잡고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겨우 일어서는 데 또다시 강펀치가 연달아 얼굴에 작렬한다. 세 번째 다운!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선다. 얼굴은 부어 있고 눈은 멍이 들었다. 바람이 분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링 위에 우뚝 섰다. 이 마지막 장면이 이 책의 표지 그림이다. 이처럼 그림서사는 분명히 권투하는 이야기다.


이제 글과 그림을 합쳐서 읽어보자. “산을 오른다.”라는 첫 문장은 등산이야기가 아니라 권투 선수의 인생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즉 삶의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서사를 다룬다. 또한 그림은 권투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글은 그림으로 인하여 등산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림은 글로 인하여 권투시합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글과 그림이 통합되어 더 큰 의미의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책의 세계다.


이 책의 주제는 경쟁에서 승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섬에 관한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한다. 경제적인 실패를 비롯해서 건강의 실패, 대인관계의 실패, 입시의 실패, 승진의 실패 등등. 객관적으로 같은 크기의 역경인데도 어떤 사람은 훌훌 털고 일어서는 데 어떤 사람은 크게 좌절하여 허우적거리는 것을 본다. 그 차이는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바로 회복탄력성의 차이다. 영어로 회복탄력성을 "resilience"라고 하는데 이는 고무줄처럼 늘였다가 놓으면 다시 원상태로 복원되는 힘을 가리킨다. 이 용어를 심리에 적용할 때는 우리 마음이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힘이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액의 복권에 당첨되거나 매우 중요한 승진을 했을 때처럼 기쁜 감정도 얼마 지나면 평상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을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다고 본다. 최근의 심리학의 경향은 문제 해결중심에서 평소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이 바로 이를 과제로 다룬다. 몸의 근육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의 근육역시 평소에 꾸준히 길러두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서 깊이 토론해 보고 싶다.

 

<토론을 위한 발문>

 

1. 이 작품을 한 사람이 낭독하고 그림 없이 글만 귀로 들어보자. 무슨 이야기인가?

2. 이 책을 그림만 관찰해 보자. 무슨 이야기인가? 어떤 인상을 받는가?

3. 이 작품을 글과 그림을 합쳤을 때 무엇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가?

4. 권투 선수들이 착용하는 가드란 우리 삶에 어떤 은유적 표현인가?

5. 권투경기에서 가드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6. 권투경기와 인생은 어떤 점에서 닮아있는가? 또 다른 점은 무엇인가?

7.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나의 회복탄력성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8. 내가 가드를 올려야 할 때는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9. 내가 역경을 딛고 일어선 경험이 있다면?

10. 이 책의 그림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는가?

11. 이 책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12. 이 책에서 산에 오른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등산과 우리 삶은 어떤 점에서 닮아있는가?

13. 이 책에서 바람이 분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14.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은유적 표현들인 산과 오른다, 좁은 골짜기, 바위, 웅덩이, 언덕, , 바람, 길 잃음 등의 의미를 해석해 본다면?

15. 이 책의 제목을 내가 다시 지어본다면?

16. 표지와 속표지, 본문을 하늘색으로 선택한 작가의 의도는?

17. 작가 고정순의 삶의 경험이 이 작품 속에 어떻게 녹아있는가?

 

<독후활동>

 

1.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작가 고정순에 관해 연구해보자.

2.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도화지에 그려보자. 그런 다음 제목도 짓고 설명도 붙여보자.

3. 가드를 올리고 있는 주인공에 대해서 순간포착 묘사 글쓰기를 해보자.

4. 내가 살면서 극복해 온 역경의 목록을 만들어보자.

5.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좋은 방법을 목록으로 만들어보자(공동작업 가능)

6. 역경을 딛고 성장한 사람들의 사례를 연구해보자.

7. “역경이란 나에게....”라는 주제로 공동 시 쓰기를 해보자.

8. 역경을 주제로 한 명언이나 시를 탐구해보자.

9. 권투 글로브를 끼고 주목을 휘둘러 본 다음 느낌을 이야기해보자.

10. 등산과 인생의 유사점을 이야기해보고 삶의 지침서를 만들어보자.

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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