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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이름의 영화관 - 2020 볼로냐 라가치상 시네마 특별상 수상
지미 리아오 지음, 문현선 옮김 / 대교북스주니어 / 2021년 12월
평점 :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작가인 지미 리아오의 작품들은 손에 닿는 대로 챙겨본다. 그녀의 작품은 한 장면 한 장면을 정성껏 그린 삽화들이 무척 마음에 든다. 맨 앞에 하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의자들이 타원형으로 줄지어 늘어선 단순한 영화관의 풍경을 어쩌면 이렇게도 다양하게 그릴 수 있을까. 작가의 창의력에 깊은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가 떠났다.”
이 첫 문장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은 아빠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가서 슬픔을 달랜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엄마를 영화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틈 날 때마다 영화관에 간다. 자라면서 10대에는 아빠대신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다. 때로는 혼자 가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 운명처럼 영화관에서 짝을 만난다. 영화를 만드는 가난한 감독인 그와 결혼한다. 둘은 함께 영화를 보며 앞으로 만들 영화를 꿈꾼다. 하지만 남편이 만든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그는 그녀를 떠난다. 그런 상황에서 딸이 태어난다. 엄마는 아빠를 데려다 놓으라고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려고 영화관에 데리고 간다. 어느새 주인공도 나이가 들었다. 늙으신 아빠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던 날 익숙한 냄새, 아니 평생 잊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냄새를 알아차린다. 엄마냄새다! 냄새가 이끄는 대로 어둡지만 능숙하게 의자 사이를 지나 나이 지긋한 할머니 곁에 앉는다. 노인 옆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끝 장면에서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소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참 떨어진 뒷줄에서 그녀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도 보인다.
영화란 이야기를 공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다. 그러므로 영화를 ‘이야기’로 바꿔서 쓸 수 있다.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지만 이야기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도 하고 현실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이야기와 삶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다. 이야기와 인생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작가는 멋진 그림과 함께 잘 펼쳐내었다. 이 책에서 ‘영화관’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자 3대에 걸친 삶의 중심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현대인은 누구라도 영화관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마중물 삼아서 나의 영화관에 대한 기억을 꺼내 마음속에서 상영해 본다.
내가 어린 시절 시골에는 영화관이 따로 없었다. 그 대신 장마당에다 천막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해가져서 어두워지면 영화를 상영했다. 출력 높은 앰프로 홍보를 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우리 동네에서도 영화 상영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도 가난한 시골 소년에게 몇 푼 안 되는 입장료도 없어 밖에서 앰프로 흘러나오는 대사를 듣는 것으로 만족할 때가 많았다. 어떤 친구는 천막의 빈틈을 들추고 몰래 입장하려다 붙들려 꿀밤을 얻어맞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기 10여분 전에 천막을 걷곤 했는데 마지막 부분은 볼 수 있다. 지금은 무슨 영화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중국 무술 영화가운데 몇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1984년 동기들보다 좀 늦은 나이에 대학생이 되어 서울 신촌에서 살게 되었다. 그해 신촌 로타리 근처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를 보았다. 첫 영화관 체험에다 줄거리 역시 충격적인 내용의 SF영화였다. 그 후로 터미네이터의 모든 시리즈를 몇 번이고 챙겨보는데 영화가 던진 시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평생의 화두처럼 내 마음에 맴돈다. 몇 년 후 아내 될 여인과 영화관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내 손을 꼭 잡아주던 것 말고는 정작 작품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결혼해서는 가족들과 더불어 영화관 가는 것이 즐거웠고 종종 혼자 조용히 영화관을 찾기도 한다.
영화라는 옷을 입고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온 수많은 이야기와 음악, 장면들이 삶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어 함께 살고 있다. 영화가 나를 통해서 현실을 살고 있는 셈이다.
<토론을 위한 발문>
1. 나에게 영화관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2. 나의 인상 깊은 영화관 체험은?
3. 주인공의 삶에서 영화관은 어떤 의미인가 있는가?
4. 내 삶을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하고 제목을 붙인다면?
5. 책의 그림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면?
6. 이야기가 우리의 내면세계를 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까?
7. 나의 삶이나 가치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있다면?
8. 나를 울게 만든 영화는?
9. 나를 웃게 만든 영화는?
10. 나를 성찰하게 만든 영화는?
11. 주인공이 나이 들어서 엄마 냄새로 늙으신 어머니와 조우하는 데 엄마냄새에 대한 나의 기억은?
12. 냄새와 관련된 나의 기억은?
13. 현대인들에게 영화관의 기능은?
14. 내가 영화관을 오감을 활용해서 묘사해 본다면?
15. 내가 영화관 사장이라면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보고 싶은가?
<독후활동>
-내 삶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고 가정하고 포스터 그리기
나는 눈물을 닦은 뒤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영화 결말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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