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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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이 북조선을 흡수통일 한 뒤 5년이 흘렀다. 북조선 사회는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그들 세계를 구성하던 논리는 존재하지 않은 듯 사라지고 새로 생긴 땅에서 그들은 2등 구성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어쩌면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을 나라의 국민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살고 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버텨왔던 한스러운 세월은 갔지만 지난 세월을 위로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사회의 밑바닥을 구성해갔다. 실제로 땅굴을 파는 이도 있었지만 사실은 삶을 내던진 격이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현실이었고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마주한 과제였다. 그들의 새로운 이름은 건달 혹은 화류계의 꽃- 모두 알몸을 하고 서울을 살아가고 있었다.

  남한 사람들이라고 삶이 행복하겠느냐만 모두들 북조선 사람들을 깔고 앉아 서러운 자기 위안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모든 사람들은 불안을 품고 있다. 그 불안은 잔인하게도 인간성을 잠식해 가는데 누군가를 아래에 두어야 나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인냥 존재를 조급하게 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너도 나도 같은 존재라는 이해없이 이루어진 어떠한 구호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뮬레이션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21세기 남한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것을 그려보겠다던 작가의 목표는 성공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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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러가 좋아
주원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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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주인공은 글을 쓰는 남자이다. 그의 글은 대부분 섹스에 관한 내용이었고 그의 현실도 그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불빛에 떠밀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아버지가 찾아온다. 그의 아버지 역시 그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부자는 성적 구원을 찾아 함께 도시를 떠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와 다른 시대를 산 사람이었다. 그는 욕망에 목이 말라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는 아들에게 최소한의 양심과 친취적인 것과 이상을 말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것들에 냉소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시대에나 생기있는 말들이었다. 그의 시대는 그런 복잡하고 귀찮은 것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장사치뤄 땅 속에 묻어버리고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시대를 사는 아들에게 섹스는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유일한 의식이었다.

 
“삶에서 성 말고 다른 건 없냐? 나는 정말 이해가 안 가는구나.”:
아버지는 원고 뭉치를 옆에 내던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 성에 화난 것이다.
“내 소설에 성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가라면 사람들에게 뭔가 진취적인 것을 줘야 하지 않니? 이상, 목표, 민주주의, 자유 같은 것들 말이다.”
“아버지, 아버지가 말하는 그런 것들은 내 성 안에 다 있어요.” (p.64)
 

 하지만 이것은 나의 모든 것이라는 아들의 외침은 허무하게 끝났다. 그저 제자리에서 왔다갔다하는 허무한 몸짓에 불과했다는 듯이, 어느 여인과 밤을 보내고 늘어진 그는 여전히 허무한 것들의 중심에 서 있었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문득 나는 이미 지나간 오늘 하루, 내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34세의 여자와 함께 허무의 중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끝내 다 마쳤을 뿐이다.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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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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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의 뒷표지에는 호들갑스러운 수식어가 박혀있었다. "파괴적이고도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 치명적인 성애 묘사를 통해 이 땅의 모든 불우한 청춘들의 벌거벗은 삶을 시리도록 아프게 그려 낸 감동적인 성장소설" 소설을 읽기도 전에 그 호들갑에 질렸다. 평론가들은 언제나 더 자극적인 문구를 써서 소설을 소개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화려한 수사들은 그저 그들의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이 자신 앞에 펼쳐진 시궁창 같은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과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감, 고립감, 패배감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잃어본적 없는 듯 피상적으로 세상을 그리던 깨끗한 글 과는 차원이 달랐고 거칠지만 이 편이 더 솔직하고 정확하고 잘 읽혔다. 

 
  나 역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언제나 혼자인 이곳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자괴감과 피해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고 모두에게 선택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에이스와 같은 삶을 나 또한 바라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나누어도 내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고, 그런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머물러 주지 않았다. (p.213)

 
  하지만 소설은 그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못했다. 너무나 현실적이기만 한, 졸업을 앞둔 내가 이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질척하고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를 갉아먹지 않고,

허무함에 갖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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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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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신들의 땅이었던 강은 댐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뒤 늙어만 갔다.

  아픔과 불타는 것, 살아있다는 느낌- 금기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소녀는 그녀를 통과한 거센 세월만큼 차가워져갔다. 

 

  강의 입구를 막아 더 많은 쌀을 얻은 사람들, 차갑게 그녀를 외면했던 수많은 얼굴없는 사람들은 알길이 없었다.

  그 강물이, 그 조그만 소녀가 얼마나 많은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대해왔는지, 얼마나 큰 경의로 모든 것을 모셔왔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부딪혔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었는지,

  그저 답답하리만치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그들이 자기 만의 박자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4개의 강에서, 아니 곳곳에서, 모든 거대한 것 아래 작은 것들의 신이 숨막혀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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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
심종문 지음, 정재서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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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방의 마을- 성 안의 일상은 고요하다. 그 마을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큰 인물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일에 대해 깊어지라 한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보름달이 뜨면 한판 축제가 벌어진다. 사람들은 등불을 들고 걷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다. 축제의 끝자락에 하늘 가득 내리는 불꽃비는 그들 삶에 대한 씻김굿이었다. 

  이 고요한 마을에 이야기를 불어 넣는 것은 강이었다. 많은 이들이 강으로부터 왔고 강으로 떠났으므로 강은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취취의 엄마는 오래 전에 강을 건너 온 장교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스스로의 책임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그녀에 대한 마음을 잘라 내지도 못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독약을 삼켰다. 그 앞에서 뱃속의 아이를 부여잡고 울던 취취의 엄마는 몸을 풀자마자 강으로 떠나갔다. 그들이 이승의 한을 풀고 강에서 재회했는지 모르지만 취취와 할아버지는 자신의 어미, 혹은 딸년의 몸을 던진 강가에서 삶을 이어간다. 십여 년이 흘러 또 한 사람이 강물로 떠나갔다. 취취를 사랑한다던 그 남자는 대답없는 자신의 사랑에 절망하여 이튿날 배를 타고 나가 소용돌이에 쓸려 죽었다고 했다. 그가 저항할 새 없이 물살에 떠밀려 갔는지 스스로 몸을 던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또 어느날 취취의 할아버지도 큰 비에 떠밀려 강으로 떠난다. 자신의 욕심이 손녀딸에게 해가 되었다는 절망감에 저항없이 떠내려 갔다. 장례를 지내며 취취는 꺼이꺼이 울었겠지만 강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이다.

   강은 또한 금기와 상상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강의 하구에 봉탄, 자탄, 요계롱 등의 여울이 있어 지나가기가 어렵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변방의 고요함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성이었다. 차탄에 쓸려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은 그 벽을 지키는 신령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사회적 규약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여기서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가 탄생한다. 어린 취취도 가끔 배를 타고 바깥 세상, 도원현으로 가서 동정호를 지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찾는 할아버지의 징소리와 등불을 그려본다. 강은 그녀를 가로 막고 있었지만 그녀가 외부공간으로 연결되는 상상의 통로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다중적으로 그의 삶에 작용한다. 그 것은 그가 존재하는 세계이자 상상의 원형이고 만남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눈을 감고 그려보아도 내 공간은 자꾸만 비어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이것은 과학의 승리이자 인간의 패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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