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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ㅣ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의 뒷표지에는 호들갑스러운 수식어가 박혀있었다. "파괴적이고도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 치명적인 성애 묘사를 통해 이 땅의 모든 불우한 청춘들의 벌거벗은 삶을 시리도록 아프게 그려 낸 감동적인 성장소설" 소설을 읽기도 전에 그 호들갑에 질렸다. 평론가들은 언제나 더 자극적인 문구를 써서 소설을 소개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화려한 수사들은 그저 그들의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이 자신 앞에 펼쳐진 시궁창 같은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과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감, 고립감, 패배감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잃어본적 없는 듯 피상적으로 세상을 그리던 깨끗한 글 과는 차원이 달랐고 거칠지만 이 편이 더 솔직하고 정확하고 잘 읽혔다.
나 역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언제나 혼자인 이곳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자괴감과 피해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고 모두에게 선택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에이스와 같은 삶을 나 또한 바라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나누어도 내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고, 그런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머물러 주지 않았다. (p.213)
하지만 소설은 그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못했다. 너무나 현실적이기만 한, 졸업을 앞둔 내가 이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질척하고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를 갉아먹지 않고,
허무함에 갖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