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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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이 북조선을 흡수통일 한 뒤 5년이 흘렀다. 북조선 사회는 겉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그들 세계를 구성하던 논리는 존재하지 않은 듯 사라지고 새로 생긴 땅에서 그들은 2등 구성원으로 전락하게 된다. 어쩌면 자존심 하나로 버텨왔을 나라의 국민들은 그저 고개를 숙이며 살고 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버텨왔던 한스러운 세월은 갔지만 지난 세월을 위로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사회의 밑바닥을 구성해갔다. 실제로 땅굴을 파는 이도 있었지만 사실은 삶을 내던진 격이었다. 그들에게 이곳은 현실이었고 살아남는 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마주한 과제였다. 그들의 새로운 이름은 건달 혹은 화류계의 꽃- 모두 알몸을 하고 서울을 살아가고 있었다.

  남한 사람들이라고 삶이 행복하겠느냐만 모두들 북조선 사람들을 깔고 앉아 서러운 자기 위안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모든 사람들은 불안을 품고 있다. 그 불안은 잔인하게도 인간성을 잠식해 가는데 누군가를 아래에 두어야 나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인냥 존재를 조급하게 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너도 나도 같은 존재라는 이해없이 이루어진 어떠한 구호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뮬레이션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21세기 남한 작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것을 그려보겠다던 작가의 목표는 성공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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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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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뒷표지에는 호들갑스러운 수식어가 박혀있었다. "파괴적이고도 충격적이며 반도덕적인 소설, 치명적인 성애 묘사를 통해 이 땅의 모든 불우한 청춘들의 벌거벗은 삶을 시리도록 아프게 그려 낸 감동적인 성장소설" 소설을 읽기도 전에 그 호들갑에 질렸다. 평론가들은 언제나 더 자극적인 문구를 써서 소설을 소개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 화려한 수사들은 그저 그들의 밥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여성이 자신 앞에 펼쳐진 시궁창 같은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과 마주하며 느끼는 불안감, 고립감, 패배감도 잘 표현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잃어본적 없는 듯 피상적으로 세상을 그리던 깨끗한 글 과는 차원이 달랐고 거칠지만 이 편이 더 솔직하고 정확하고 잘 읽혔다. 

 
  나 역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언제나 혼자인 이곳에서, 끊임없이 가해지는 자괴감과 피해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환영받고 모두에게 선택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에이스와 같은 삶을 나 또한 바라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나누어도 내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고, 그런 내 곁에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머물러 주지 않았다. (p.213)

 
  하지만 소설은 그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못했다. 너무나 현실적이기만 한, 졸업을 앞둔 내가 이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질척하고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를 갉아먹지 않고,

허무함에 갖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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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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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신들의 땅이었던 강은 댐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뒤 늙어만 갔다.

  아픔과 불타는 것, 살아있다는 느낌- 금기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던 소녀는 그녀를 통과한 거센 세월만큼 차가워져갔다. 

 

  강의 입구를 막아 더 많은 쌀을 얻은 사람들, 차갑게 그녀를 외면했던 수많은 얼굴없는 사람들은 알길이 없었다.

  그 강물이, 그 조그만 소녀가 얼마나 많은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대해왔는지, 얼마나 큰 경의로 모든 것을 모셔왔는지, 얼마나 치열하게 부딪혔으며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었는지,

  그저 답답하리만치 느린 속도로 움직이던 그들이 자기 만의 박자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4개의 강에서, 아니 곳곳에서, 모든 거대한 것 아래 작은 것들의 신이 숨막혀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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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 귀농 전도사 이병철의 녹색 에세이
이병철 지음 / 이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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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겸손한 제목에 마음이 끌려 이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 제목은 원래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평생 도(道)를 구하며 예(禮)를 지켜 살아가려 노력한 성인은 제자의 물음에 자신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때에 따라 사는 사람,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며 겸손한 마음을 표했다고 합니다. 공자의 눈에도, 저자의 눈에도 늙은 농부는 마음대로 하여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동양의 지혜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귀농학교를 다니면서 고쳐 생각하게 된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농사에 대한 생각입니다. 농사하면 정말 어렵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나 관행 농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한 농사꾼은 그것보다 깊은 삶을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농사는 내 손으로 내가 먹을 것을 돌보고 주변과 나누는 소농이 아닌가 합니다. 농사마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하고 있지만 돈을 버는 직업으로서의 농사, 산업으로서의 농업은 대안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은 더 나빠질 겁니다. 

글에서 몇 번 인용된 소로우의 말 “새가 둥지를 틀면서 노래하듯이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면서 노래할 수 있기를”- 자신이 하는 노동이 그저 지겨운 밥벌이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노동이 아니라 돌보고 살리고 나누는 길이 되기를, 그렇게 농사는 삶의 방식이 되어야하고 세상은 소농들의 지혜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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