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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
심종문 지음, 정재서 옮김 / 황소자리 / 2009년 3월
평점 :
변방의 마을- 성 안의 일상은 고요하다. 그 마을에 사는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뒤흔들어 놓을 큰 인물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있는 그대로 사람들의 일에 대해 깊어지라 한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 보름달이 뜨면 한판 축제가 벌어진다. 사람들은 등불을 들고 걷거나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렀다. 축제의 끝자락에 하늘 가득 내리는 불꽃비는 그들 삶에 대한 씻김굿이었다.
이 고요한 마을에 이야기를 불어 넣는 것은 강이었다. 많은 이들이 강으로부터 왔고 강으로 떠났으므로 강은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취취의 엄마는 오래 전에 강을 건너 온 장교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스스로의 책임을 부정하지도 못하고 그녀에 대한 마음을 잘라 내지도 못하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고 독약을 삼켰다. 그 앞에서 뱃속의 아이를 부여잡고 울던 취취의 엄마는 몸을 풀자마자 강으로 떠나갔다. 그들이 이승의 한을 풀고 강에서 재회했는지 모르지만 취취와 할아버지는 자신의 어미, 혹은 딸년의 몸을 던진 강가에서 삶을 이어간다. 십여 년이 흘러 또 한 사람이 강물로 떠나갔다. 취취를 사랑한다던 그 남자는 대답없는 자신의 사랑에 절망하여 이튿날 배를 타고 나가 소용돌이에 쓸려 죽었다고 했다. 그가 저항할 새 없이 물살에 떠밀려 갔는지 스스로 몸을 던졌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또 어느날 취취의 할아버지도 큰 비에 떠밀려 강으로 떠난다. 자신의 욕심이 손녀딸에게 해가 되었다는 절망감에 저항없이 떠내려 갔다. 장례를 지내며 취취는 꺼이꺼이 울었겠지만 강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날 것이다.
강은 또한 금기와 상상의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강의 하구에 봉탄, 자탄, 요계롱 등의 여울이 있어 지나가기가 어렵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변방의 고요함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성이었다. 차탄에 쓸려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은 그 벽을 지키는 신령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사회적 규약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그 경계를 넘나들었다. 여기서 수많은 이야기와 신화가 탄생한다. 어린 취취도 가끔 배를 타고 바깥 세상, 도원현으로 가서 동정호를 지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찾는 할아버지의 징소리와 등불을 그려본다. 강은 그녀를 가로 막고 있었지만 그녀가 외부공간으로 연결되는 상상의 통로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다중적으로 그의 삶에 작용한다. 그 것은 그가 존재하는 세계이자 상상의 원형이고 만남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눈을 감고 그려보아도 내 공간은 자꾸만 비어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이것은 과학의 승리이자 인간의 패배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