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인 더 뮤지엄 -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예술 인문 산책
진회숙 지음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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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모차르트의 만남을 생각하면서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그건, 음악 하면 우리가 생각나는 음악가이기도 하고, 그림을 생각할 때, 모나리자를 잘 모르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대중적인" 음악가와 그림이란 건 우리의 생활 속, 그림 안에서 혹은 음악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크로스" 컬처"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 언제부턴가 그런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흔한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 말을 음악에 대입하면 "아는 만큼 들린다" 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 책은,

"아는 만큼"이 되기 위해서.. 가 아닌 우리가 가끔 보는 그림 들 속에서 혹은 흘러나오는 리듬입니다. 그리고 그 음악 안에서 연상되는 그림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_파괴, 그리고 창조.



많은 예술은,

"파괴"를 거쳐 창조된다고들 합니다. 그것은 끝과 시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그렇게 보이시나요? 파괴된 것들은, 흉측하다,라는 것을 관념을 파괴한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솔직히, 저는 앞의 피아노가 흉측하다,라고 하는데 그런 걸 못 느끼겠더군요. 이 파괴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파괴라면, 싶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죠.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왔는데 연주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관객들 사이에서 나는 그 소리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음악이란 것의 틀에 매여있었나 봅니다. 관객들의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요.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파괴"인 것이죠. 바로 저 같은 음악은 이런 것, 이란 것에 대한 파괴요. 그러니, 미술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이것이 흉측하게 파괴가 될 수도 있도 있지만(제 눈엔 그냥 작품..) 저리 아름답게 파괴가 될 수 있단 것이지요.

파괴,

그 끝에 있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요..? 그러니, 음악의 그 형식의 파괴 끝에 나올 것도 아름답기 그지없을까 싶으면, 그건 아닐 겁니다파괴,의 선물이 무엇인지 우린 또 알 수가 없으니까요. 탄생이란 것을 말이지요.

이런 파괴의 끝, 또 패러디가 있었습니다. 물론, 패러디만 있었냐면, 그건 아닙니다. 요새 미니멀니즘이 유행하듯, 음악은, 미술은 앞서 나갔습니다. 그리고, 왜 이 "최소한"의 예술을 하냐고 하냔 말에, 즉, 단순화와 반복_은 "지속적으로 변해가는 과정, 반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앤디 워홀의 "45개의 금발 마릴린"에 묻습니다. 이게 가지는 의미가 뭐냐고요.. 그의 답은 이랬습니다.

"나의 작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조차 거부한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조차의 거부, 반복의 시도든 그게 뭐든, 복제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뭔가가 있겠지,,일까요..?

그렇다면 미술은요..?

네, 앤디 워홀의 그 반복과 복제가 있었다면, 미술은 "패러디"가 있었습니다. 그 아름답던 모나리자에 .. 수염을.. (그런데 작가 자신을 그렸단 설도 있으니..) 혹은 그들을 뚱뚱하게 했는데, 이 그림들 친근하지 않나요..? 전 보고 웃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패러디가 주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요? 이 작가, 바로 그 화장실을 놓고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한 사람 바로 페르난도 보테르입니다. 사진 보다, 책 속의 그림이 더 귀엽......습니다.. 만, 그 당시는 아마도 미술에 대한 모욕이니 어쩌니 말이 많았..겠죠...?

이렇게, 미술만 있냐면 그렇다면 "뮤지엄"이 아니겠죠..?

_ 겨울, 방랑자들._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이 그림, 굉장히 익숙하지 않습니까? 어디서 봤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최근 저는 이 그림을 드라마 #모범택시_에서 봤습니다. 그들의 비밀,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겨울, 혹은 결심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 방랑자의 그림은 그 외에도 참 익숙하다, 싶으면 떠오르는 울 음악가, 바로 슈베르트가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원어로는 아마, 겨울 여행이 맞겠지만 왠지 겨울 나그네가 더 어울리는 듯?이라는 작가님의 말도 있습니다만)<얼어붙은 눈물><작별 인사>등, 우리가 아는 감미로운 것 같은, 슈베르트보단 실은 그런 쓸쓸한 음악, 겨울에 가까운 음악들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결연한 느낌이라면- 어쩌면, 그것이 뒷모습이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겨울 나그네>가 허무주의의 끝을 보여준다면, 프리드리히는 그 황량함 속, 살아남기 위함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겨울을 연상케 하면서도 이리 다를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마치, 이 그림과 같죠. 누군가는 벗고 있고, 누군가는 옷을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의 정의를 내리진 못할 것 같습니다.

집시는 "자유"를 존재의 유일한 근거로 삼고 살아가는 집단이다. 그들의 삶에서 자유를 빼면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삶이 되어버린다. 인습과 규범, 제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 삶을 살기 때문에 ...

본문 258p

제게, 그래서 예술에 대한 정의를 하라면,

어쩌면 저 말이 딱 맞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집시"에 예술가를 넣으면, 그렇게 틀리지 않은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그 예술가들을 또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관습에서 벗어나 파괴를, 그리고 아름다움의 틀을 깨버렸나 싶으면 어느새 다시 돌아가고, 더한층 아름다움을, 그런가 싶으면 어느새 두 얼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 조각상.



콜비츠의 피에타입니다. 우리는, 그 유명한 <피에타>를 알고 있습니다. 그 피에타를 보면서도 "성스러움"과 자식 잃은 어머니의 절절함이 느껴진다면, 이 피에타는 거기에서 "성스러움"을 빼버린 그냥,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위대하다는 어머니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란 자식을 위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 이름은 바로 또 그런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자식을 보면서 절망, 그 이상의 슬픔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콜비츠 역시, 아들을 전쟁에서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일생 동안, 인간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슬플까?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저도 작품들을 직접 보기까지는 도대체 저게 뭐야,라는 느낌이었고, 음악을 들을 때까지는 그 비싼 vvip를 지불하면서까지 들어야 하나? 3층에서 들어도 1층에서 들어도 음악은 소리일 분일 텐데..라고 했으나.

직접 보니, 이건 좋다.. 그 외엔, 설명을 할 수가 없었으며

직접 그 좌석에서 들으니, 그 음악가의 떨림이며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 쿵, 하고 내려앉을 것 같긴 합니다. 그리고, 사계로 유명한 음악가 비발디의 <스타바트 마테르>의 비통한 음악이 떠오르는 그 순간, 이었다고도 합니다. 둘 다,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그리고 비발디는 <독창자 혼자 고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고독>을 노래한다는 것_ 결국, 통곡인 것이죠.


조금 아쉬웠던 건,

이 그림들 속, 음악의 설명은 잘 돼 있는데 그것이 qr코드로 조금만 가까이 들려줬더라면, 하는 것은 있었습니다. 음악이 많아서일까 싶지만, 그 음악을 들으면 아! 하고 그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점은 아쉬웠죠 뒤에 리스트는 친절해, 찾아 들을 순 있었지만요.

뮤지엄. 박물관으로 흔히 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박물관은 여러 문화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무언가의 연상, 그것이우리와 그래도 가장 가까운 미술과 음악, 음악과 미술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그림 속에서 들려올 것만 같은 혹은, 생각나는 음악, 그리고 반대로 음악을 들으면서 연상되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전혀 아닌 듯, 그런데 그 어떤 이미지로 그려내는 그것, 참으로 예술은 신기하기도 합니다.


*본 포스팅은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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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그리고 비대면의 시대.

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고독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고독한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진정 그 시간을 즐겨보라. 그 고독이 주는, 자유를 그림에서 또한 찾아보라. 


예술이 죽었는가?

아니다, 지금부터 예술은 그림은, 인간의 고독한 자유함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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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2인조 강조, 그리고 그들과 달리 훨씬 더 거금을 훔치고도 걱정하나 없는 부패 공무원, 

여기에, 강도들을 잡는 강력계 형사까지. 


그들이 엮이면서,

주여 우리를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처럼,

다만 부패애서 구하소서


과연, 그 혼전 속, 누가 부패에서(?!) 구원을 받을 것인가


그 슬랩스틱 같은 스릴러를, 중국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쯔진천이 들고 왔다.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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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그녀
사카모토 아유무 지음, 이다인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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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의 시작은 그랬습니다. 마치, 이방인처럼요.

'상중(喪中)이라 새해 인사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_라는 엽서가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3년 전 이미 헤어진 연인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 특히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부고는 후타에게 안타까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으니까요.

펫 시터, 그의 말을 빌자면 말이 좋아 펫 시터이지, 실상 이것저것 다 해야 하는 "무엇이든 도와드립니다"의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란 거죠. 하지만,

후타는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큰돈은 벌지 못해도 어머니가 걱정을 해도, 그 일은 자신이 택한 일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읽으실 분들은 패스를 하세요.




3년 전 헤어진 연인의 부고, 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4년 전 사귀었고 헤어진 모토하시 란의 블로그는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설마, 인 것이죠. 그의 말처럼


"그래, 장난이겠지.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둘이나 죽었다니. 그런 우연히 있을 리가 없잖아?" 본문 30p


하지만, 두 명까지 그런 느낌이 들자 그 기묘함은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연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세 번째 연인이었던 하야시 에미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행방 역시 묘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들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들이 말했던 그 모든 것들은 거짓과도 같았던 것입니다. 란, 미사키, 그리고 에미리까지 만났던 적이 없었고 그 혼자의 상상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말이죠. 만약 유키에가 없었더라면, 미사키를 만난 일부터 부정당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그녀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아니, 왜 죽은 것일까요? 그 접점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지, 하나. 후타의 연인이었단 사실만 존재합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고 각기 다른 환경인데 어째서인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 의심은 내가 혹시 해리성 인격 장애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그래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의 추적이오.



하나를 찾으면, 하나가 안 보이고,

하나가 보이면, 또 다른 하나가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유스케의 도움으로 찾은 엽서의 주인공, 미사키의 어머니를 간신히 찾았는데 되려 거기서 그는 부정당합니다.

도대체 왜일까 어째서 다들 나를 거부하는 것일까. 어째서 세 사람에 대해 감추려 하는 것일까. 어째서 알려주지 않는 것일까. 본문 167p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혹시,라는 의구심도 가지게 만들면서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면서 그 진실의 순간이 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초반 부분 작가가 많은 힌트를 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 아닐까, 싶었는데 네, 그 부분은 아마도 조금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어느 정도는 읽어내셨을 것 같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까지는 알아차렸지만, 그 진실의 또 다른 이면, 을 보는 순간, 왜 그가 펫 시터여야 했는지 왜 작가가 유스케의 과한 행동들을 굳이 넣어야 했는지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어색한 듯한 이질감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었습니다.



진실은, 그리 제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고

늘, 더 깊숙이 폐부를 찌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제겐 그랬습니다. 그 웃음 뒤에 숨어있었을 그 칼날에 찔리는 울음이 있었습니다.

마치, 파란 장미와 같았습니다. 지금의 파란 장미는, "파란색에 가장 가까운"일 뿐,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이만큼까지 오기까지 얼마큼이 걸렸을까 싶고 또 어쩌면 그 불가능한 일은 가능하게 될지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위한 하나의 과정 속, 누군가들은 그렇게 푸른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파란 장미와 같은 그녀들은 숨기려 하는 사람들 틈 사이, 아마도 찾아주길 바랬을 겁니다.

그리고, 찾고 나면 그에게 줄 러브레터까지 미리 써놓았습니다. 왜냐면, 그게 증거고 그에게 줄 유일한 선물이고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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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독성도 좋고,  무엇보다 깔끔한 전개와 함께,

 전반에 거쳐, 이방인을 생각나게 하는 처음 "전"과 마지막, 이 책을 덮을 무렵 미스터리의 "드마마'와 '캐릭터'에서, 서늘함보단 따뜻함, 힐링을까지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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