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 추하다 당신의 친구
사와무라 이치 지음, 오민혜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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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그것은, 마녀의 주술만이 아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욕망, 그 중에서도 또한 여자들의 가장 큰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새 그 욕망은 권력이 돼 버렸다. 아름다움이 주는 힘을 알아버린 세상이다. 
그리고, 작디 작은 교실 속에서 그것은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그 반대편의 힘은 어떨까?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인 더 많다. 그렇다면, 그들은 전혀 힘이 없는가?

난 못 생겼어. 난 못 생겼어. 얼굴이 못생긴 내가 싫어.
그러니까 선택받은 거야. 가질 수 있게 됐어.
소문은 사실이었어.
본문 15p

"하무라의 완조가 끝난 거잖아. 여왕님이 됐든, 공주님이 됐든 간에 하무라의 통치가"- 본문 44p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일은, 
결코 사고가 아니었다. 그녀가 말한 "유어 프랜드의 정체는 무엇이며, "못 생겼기에 받은 "선택"은 무엇일까? 그들만이 아는 그 비밀의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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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 희곡으로 만나는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정중헌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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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경자. 이 이름은 들어는 봤지만 그런 화가가 있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실제로 봤을 때, 느낀 건 슬프다..였습니다. 그 후, 더욱 그 이름이 알려진 건, 바로 위작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잊혀져 갈 때쯤, 다시 그녀가 바랐던 사막, 그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8월 세상을 떠났단 뉴스만 듣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다시 책으로 만났습니다. 처음 그녀의 작품을 봤을 때 기묘하게 우리나라 사람 같지 않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웃고 있지 않았다고 그날 적었었고 그건 지금 다시 책으로 본 그림에서도 그랬나 싶으면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날, 제가 본 그림은,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이런 그림이 주였습니다. 웃지 않고 있는 여인들. 그리고 꽃으로 둘러싸인 여름이되 겨울의 여인을 보고 있었습니다. 꽃의 화관을 쓰고, 또 꽃으로 둘러싸여 있어도 웃지 않는 여인이었으며 웃고는 있지만 어딘가 서글픈 여인들을 만났었습니다. 책으로 보면 조금 웃는 느낌인데 그림으로 만났을 땐 처연한 느낌이 왜 들었을까요? 그림이란 게 그날의 기분을 말해주기도 하는데 그날의 저는 그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녀들은 웃지 않는가, 라면서요. 색채의 화려함으로 그녀들의 우수를 가리고 있다고요.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 같지가 않음은 그녀가 말했듯, 사막의 여왕이라면 아마도 이런 피부 아닐까, 싶었고

꽃의 화관과 만났지만 왜 그리 기뻐 보이지 않는지, 싶으니

"그 순간 슬픔이 괴어 와 저는 그대로 내 슬픈 눈망울만 내놓은 채 사막을 달리고 싶었어요. 지구에서 하염없이 짓밟혀 온 콩알만도 못한 존재의 의식 때문에 스스로가 가엾어진 것이지요"(본문 107p)

어쩌면 그런 것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옮겨놓은 것을 제가 그냥 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녀가 거부하는 것과 만나고 싶은 것들을 말입니다



환상여행

제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미묘한 몽롱함과 함게 어쩌면 여기에 그녀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라서일까요..?그녀가 남편과 생사를 확인할 길 없어지고 만난 남자는 왜 이런 사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천경자의 자존감은 아주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아주 살 길이 없어 그와 함께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너무 사랑해서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사랑을 택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또 부인까지 있었으니 도대체 왜, 싶었을 정도였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모습의 한 페이지로 인정한다 해도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혹은 그때의 아픔들이 그녀의 그림에 많은 도움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생태

하나는 생태, 라는 그림으로 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그림으로 천경자라는 이름을 알렸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면 어떨가 싶었습니다. 제가 본 그림들은 거의가 다 그 옆에 있는 것과 같은 여인들의 그림이었기에 이 "생태"란 그림을 보면 정말 그 꿈틀거리는 것과 같은 그 무엇가가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책과 실제 그림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걸 직접 보지 않으면 이게 뭐야, 하게 되기도 하고 왜 그 그림들을 그렇게까지 돈을 주고 살 가치가 있는가?할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 그림을 한 번 보고 싶긴 합니다.

꿈들거리는 뱀이 여러마리,

그 당시 저 그림은 파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녀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을테고요. 그러나 그녀에게 김상호를 제외하고도 꽃길만 있던 건 아니었죠.

꽃에 대해선, 작가인 기자는 이리 말합니다.

"꽃은 그 자체가 색체의 파티입니다. 회화적 요소로 최고라며, 꽃을 통해 계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생의 기쁨이나 죽음을 상징하기에 천경자의 인물화에는 꽃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유독 많다(본문 187p)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생명, 그 땅을 기어다니는 뱀, 그리고 그 엉킴이 우리와 같지 않을까 싶어, <생태>는 한 번 꼭 언젠가라도 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책은, 천경자에 대한 설명과 그림보다 "희곡" 형식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은 단 두 사람, 기자와 천경자 그 둘의 대화여선 차라리 모노드라마로 했더라면, 싶었는데 아무도 묻지 않은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보단, 누군가가 묻고 또 그에 대해 답하는 형식이 글의 초반에 있듯, 희곡의 정석으로 보긴 어렵지만, 순수한 그녀의 삶을 그대로 기리기 위함, 그대로 알리기 위함에 가장 진실하고 싶어서 굳이 이 희곡 형식을 택했다고 했습니다.

챕터는 네 챕터로 나뉘어 있었고,

가장 길면서도 또 가장 슬픈면서도 화가로서의 시작인 이 책의 표제처럼 쓰인 "천경자, 그 슬픈 전설의 91페이지"였습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만 그 후, 그녀의 그림 이야기로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술술 말하면서도 또 자신의 그림이 "일본화" 같다라는 오해도 받았지만- 하지만 그녀가 일본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 결국 내 그림인 것이죠.



그림을 잘 그려내던 그녀는,

글도 잘 쓰더군요 모든 미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또 잘하기도 하지만, 내 작품에 시적으로 말하기 서툰 사람들도 많은데, 천경자 화백은 시인처럼, 또 에세이인 듯, 뒤에 그녀의 에세이를 보면서 이런 감성이 그녀의 그림을 그리게 만들고 붓을 들게 했구나, 싶었습니다. 아마 그녀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거나, 다른 예술 계통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위작.

대표작을 기증하고 저작권까지 환원한 최초의 작가인 그녀에겐 나의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 같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경자 화백이 사랑한 그림, 그것들은 우리 곁에서 그녀의 생을,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남겨놓았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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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거니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이지수 옮김 / 가나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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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아니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동안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건 사실, 여자들이 외모에 더 관심이 많아서 부각됐을 뿐, 남자들도 동안이란 소리에 좋아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결국 포기하면서 말합니다.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오늘 이 책의 주인공인 오지 하나는 말합니다. 아니라고요. 그 스스로 얼마나 "젊음"을 포기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실천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또래보다 열 살이나 어려 보입니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나이를 듣고 놀랍니다. 거의 열 살은 어리게 보이니까요. 그녀의 나이, 일흔여덟.

그 나이에도 동안이 있는가 하면, 존재하겠죠. 분명. 그런 그녀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잘 사는 일품점으로 시집왔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이와조와 결혼하고 한동안은 괜찮았으나 시대의 흐름상 거대 마트, 24시간 편의점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편이 포기할 때, 그녀는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저 남들에게 "보이는" 부잣집에서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아서 곱디곱게... 가 아니란 거죠. 자전거를 타고 비 오는 날 구르기까지 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말입니다.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왔고, 이제는

남들보다 더, 외면도 꾸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가끔은 내 게으름의 핑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외면은 그 사람의 내면도 나타나기도 하니까요.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지 하나에게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아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뜻밖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저 생각을 하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찾아올 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 둘째치고 한 통의 문서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발칵 뒤집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껏 자신의 인생은 뭐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흔여덟을 살아오면서 가장 위기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보통의 우리라면 분노 그리고 또 분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는 달랐습니다. 오지 하나는 그런 순간들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필요한 건 또한 가족이었습니다

이야기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과 또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우리를 몰아가면서 오지 하나에게 이입하게 합니다. 그녀는 왜 이토록일까, 싶으면 읽다 보면 어느새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이 옳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녀가 다 옳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앞날이 없으니까, 곧 죽을 거니까, 바로 그래서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다. 곧 죽을 거니까 끝까지 위장하고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알고는 있다. (본문 285p)

 

이야기의 전반부는, 웃음이 나면서도 하나에게 조금 덜 이입됐다면, 특히 며느리인 유미의 옷차림들을 속으로(속으로 하니 다행이란 생각도..)하면서 한 명은 겉으로 허세를, 한 명은 화가란 것에 허세를 부리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어느새, 진짜 허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옵니다. 하나의 큰 사건은 우리가 또 하나를 조금 이해하게 할 때쯤이었습니다. 여기선 되려 신파면서도 슬펐는데, 그 후,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선상에서 오지 하나가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편안함...에이스) 의연한 모습을 모여주는가 하면, 또 손주들이 그녀에게 아주 큰 위안을 줍니다. 그깟 거, 하면서 다가와 주는 가족의 손길의 묘한 따뜻함이랄까요..? 유미와는 여전히 맞지 않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래도..구나, 싶었습니다.

제 경우는, 이 이야기의 가독성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초반의 하나가 조금 제게도 너무 이렇게까지 해야.. 하고 다가온다면, 중반부부터의 그녀는 여전히 멋있지만,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후반부쯤, 저는 오지 하나가 아마도, 이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의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나이가 지금 일흔셋이니까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을 수 있는 그런 날들을 어떻게 멋지게 보낼까,라면서 말입니다.

 

 

네, 하나의 나이는 작가보다 많은 일흔여덟. 그럼에도, 그녀는 오늘도 의연하지만 아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 하루하루를 그리 살았기에 그녀가 멋있고, 남들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려 보였던 것일 겁니다. 여자들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아니오, 그런 이야기 아닙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고령 연령자인 오지 하나의 그 삶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그녀가 아름다운 건, 또 그 연륜 속에서 묻어 나오는 그녀만의 지혜라는 것,입니다. 혹은, 그저 재미로만 읽어도 괜찮았던 소설, 살벌한 제목의 <곧 죽을 거니까>였습니다. 죽일 거니까, 보다 낫잖아, 하고 시작해 보셔도좋을 것 같습니다.

 

잘난 척하는 '지식인'들이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종종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이와 관계없이 젊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희망을 잃은 사람은 부쩍 늙는 거죠?"라고 말한다. 이런 번드르르한 말은 늘 듣기도 싫었는데 지금은 알겠다. 옳은 말이다.

다들 눈물주에 기분 좋게 취했다.(본문 37p)

그리고, 하나 씨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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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가독성도 좋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장편소설이니, 당연히 일본적인 요소,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이제껏의 주인공들의 연령대보다 훌쩍 높이 올라갔음에도 이 오지 하나가 매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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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철학 공부 EBS 30일 인문학 1
윤주연 지음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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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단어는 어려워 보이지만, 실상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개똥철학. 이 말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말이, 그럴싸할 때도 혹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에도 붙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왜인가 싶으면, 아마도 저 뒤에 있는 "철학"이라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무슨 모토가 있다면 그게 철학이 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철학은 시작된 것일까는 물음은 의미가 딱히 없을지도 모르지만,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 "계보"라는 것은 있습니다. 사계절로 치자면, 봄, 여름 쪽의 계열이 혹은 피부 톤으로 치자면 쿨톤, 웜톤 거기서도 또 나뉘는 그런 것들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게 궁금해져서 이 책,의 제목에 이끌리어 책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나,

그 신호탄을 연 사람이라면 아마, 이 사람일 겁니다. 바로, 소크라테스.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그의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실상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죠. 사실, 그래서 이 말은 굉장히 난해하고도 어렵다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그의 소리를 우리가 말하는 "개똥철학"이 아닌, 철저한 논리학,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데 이 두 사람이 전 재미있었습니다.

플라톤이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면서 하늘로 손가락을,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정 반대인 손가락이 땅으로 향한 "아테네 학당"이던가요? 거기서 볼 수 있듯, 스승과 제자가 첨예한 대립이라도 했을까 싶으면 아닙니다. 그건 그들 스스로의 "철학"일 뿐, 남의 철학에 대립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를 뿐"이지 그것으로 그 손가락을 상대방에게 향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절제의 학파인 스토아학파가 있었다면 쾌락의 학파 에피쿠로스가 있었습니다만, 여기서의 "쾌락"을 지금의 쾌락처럼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아타락시스였던가요? 그 쾌락이 내면의 쾌락 자신 자신을 위한, 집중이었다고 하니 내면의 쾌락이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고 해야 할까요? 첫 시작인 1장, 모든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면, 5장 공존의 방법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인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의문,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어쩌면 그 그림 한 장에 다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작가가 말한 중세 시대 즉, 신에게서 자유롭지 못하고, "철학은 신학의 하녀다"라는 교부철학의 철학의 암흑기라고 하는데, 저는 인간의 존재를 못 찾았기에 그들은 "신"에게 오롯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들이 수학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 바로 "숫자"라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택했듯 말이죠.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하던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그리고 인간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전쟁에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건 인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일 뿐, 작가의 말처럼 그 시대가 철학의 암흑기라는 건 인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죠. 왜냐면, 교부철학이 꽃을 피웠고, 그 안에서도 많은 논쟁들을 인간은 가져왔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런 철학자들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것을 깨트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1000년의 철학, 교부철학에 도전장을 내던진 사람, 아니 깨진 말이 바로 이 말이라고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데카르트)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존재하기에 앞서 "본질"을 추구하던 소크라테스라면, 과연 본질을 앞선 존재(본질은 존재에 앞선다, 사르트르) 과연, 존재하기에 생각하는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점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다시 신에게서 인간으로 주제를 옮겨온 것입니다. 그 후는 우리가 아는 철학자들이(저는 이름만 들었던..) 나옵니다. 그리고 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인지 인간의 "욕망"에 또 초점을 맞춘 철학자들이 있으니 그 유명한 프로이트와 라캉입니다.

그 둘은 무의식을 다루면서, 의사로서 제명당하고 파문까지 당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인간의 무의식.. 어쩌고 하면 대학 때, 심리학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강신청했으나(그것은 개론.. 개론은 다 그렇다고 합니다.) "각인" 하나는 정말 각인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샤르트르, 그리고 그 유명한 "칸트"가 나옵니다. 이 칸트의 도덕관 다른 게 바로 벤덤의 "공리주의"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선이다,라는 벤덤과 칸트의 도덕과 무엇이 맞는가는 각자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신을 벗어나, 인간의 이성, 존재, 본질에 대한 논의와 함께 나오는 것이 바로 "공존"의 문제인 것입니다. 왜냐면, 이제 철학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정 계급의 사람들만 향유하던 철학은, 가라!랄까요? 그러다 보니, 어쩌면 벤덤부터 아닐까, "다수"의 행복이 과연 선일까? 싶지만, 지금 많은 나라들이 이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고 있단 것이 또 칸트가 틀렸다가 아니라, 중세에 신이 필요했고 이성을 지나, 지금, "공존"으로 온 것이니까요.

마르크스의 주장은, 자본주의를 착취 체제로 보면서, 계급 간의 갈등, 투쟁..이라고 하지만 그가 말했던가요? 종교가 마약이다, 란 말처럼 그 계급 간의 투쟁과 갈등은 당연한 인간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 마르크스의 주장을 지금 알랭 바디우가 조금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공산주의"는 없었기 때문이다,라면서 공산주의야말로 철학이 담긴..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특성을 모두 제외한다면 그것이야말로..라고 주장한다는데, 글쎄요, 이제껏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이어져 오던 게 철학 아니었던가요? 제가 뼛속까지 자본주의적 인간이라선지, 요새 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는 저에겐 여전히 저평가입니다. 이미 실패했는데 인간의 모든 고유한 특성을 제외한다? 이게 무슨... 싶었던 것이죠.(이건 저란 인간의 고유의 특성입니다)


그렇게 5장까지 오면서,

말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철학이란 것이 저자의 말처럼 어렵긴 하지만 "처음 하는"이면, 처음답게 조금 말을 쉬이 적을 수도 있는데 꼬고 꼬고 해서, 제가 풀어서 읽어야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이 제겐 너무 힘든 철학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기는 한국입니다.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까진 어려워도 이해를 했으나, 도대체 철학 이야기에서 삶으로 자연스럽게 와야 하는데, 일본인가요? 마치, 일본 드라마가 자,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이렇게 나아가야 하죠?라는데 학문은, 학문으로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인간 고유의 특성"에 맡기고, "이성"에 맡겼으면 좋았을 텐데 왜 자꾸 교훈으로 가시는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헤겔 하면, 변증법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헤겔 편에서 전혀 언급이 없어선 살짝 의아하긴 했습니다. 하긴 너무 방대한 철학이라 그 정도는 빠져도 싶지만, 누군가에겐 그걸로 아, 헤겔이 그 사람이지!라는 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석 또한 그렇게 도움이 안 돼, 이게 굳이..?라고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처럼요. 사실, 사르트르도 "타인은 지옥이다(물론 드라마완 다릅니다. 제목만.)"를 인용해 살짝 재미있게 했더라면, 싶었습니다. 저런 건 따 와닿으니까요


저자의 말처럼 너무 어렵고, 게다가 방대하기까지 하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면 한 장만이라도 충실히 다뤘다면, 저자도 조금은 쉽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철학을 자, 이제 우리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로, 교훈적이 되는 건 싫었습니다 물론, 될 수 있으면 많은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그래서 철학이 우리의 삶과 새삼스럽게 새삶스레게..가 되는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려고 한 의도임은 알겠지만 말입니다. (결국 제가 무식해서임을... 다들 철학 이렇게 "처음"이라니 싶은 자괴감이..)

철학, 듣기만 해도 어렵고, 지금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과 그리고 동서양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 비슷한 사상이었단 점도 드러내면서 철학이 결코 우리의 삶의 멀리가 아닌 바로 옆에 두어야 하며, 오늘 당신의 철학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있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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