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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
루이즈 디살보 지음, 정지현 옮김 / 예문 / 2015년 6월
평점 :
이 책의 원제는 <Slow Writing>이다. 위 제목은 출판사가 원제를 가장 '나쁘게' 번역한 예이다. <느린 글쓰기>라는 제목을 "작가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가"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한 부분도 문제지만, 최악은 "최고의"라는 표현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최고의"라는 단어에 연연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번역해야 팔린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실제로 이런 제목을 붙여서 책을 의도대로 많이 팔았을지 궁금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분명 그 기사에는 <느린 글쓰기>라는 원제가 언급되어 있었다. 원제에 끌렸다. 기사를 읽고 책의 내용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 꿈은 오랫동안 작가였다. 대학을 진학한 이후의 삶이 나를 '글쓰기' 같이 고상한(!) 일에 하기에 앞서 '생존'에 몰두하기 했기에 꿈은 꽤 오래 이루어지지 못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은 내겐 마치 희망고문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꿈이 잘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주문을 외우는 심정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이루어지기보단 포기하는 쪽이 빠르다고 생각했었고 한동안 실제로 포기했었다.
하지만 '생존'만으론 삶이 너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 단지 '생존'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쓰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올해에서야 다짐을 했다. 어떻게 (쓰기로) 돌아가야 하는지,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불안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느리지만 꾸준히 써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의 말처럼 "수십 년간 글쓰기 과정과 진짜 작가들의 작업 습관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글쓰기 과정이 "느린 글쓰기"임을 깨달았기에 "느린 글쓰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책을 완성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저자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출판 상황과는 다른 이야기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쓸 때에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맥락은 세계 어디에서든 같은 것 같다. 유명한 작가들의 일화를 들어, 글을 쓸 때 겪는 어려움은 평범한 나만 겪는 어려움은 아니라는 위로를 안겨 준다. 글쓴이 역시 작가이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도 제공한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작가가 되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하"며 "아무도 도와줄 수 없으며 오로지 혼자 자신의 길, 즉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116-117쪽)"고 말한다. 그리고 "매일 연습하라"고 권한다. 이라 글래스의 말을 인용하여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열 권쯤 소장하고 있고 스무 권 이상 읽었다. 그동안 읽은 책과 비교해 볼 때, 이 책이 획기적인 깨달음을 더해주었다고는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빨리 써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하고도 훌륭한 작가들이 (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책을 완성했음을 배웠고 그들도 나처럼 쓰기 싫고 쓸 수 없을 것 같은 수많은 시간이 있었음을 배웠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처럼 "느린 글쓰기"를 지향해도 좋겠다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