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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작년즈음 잠깐 만나던 사람이 올해 가을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은 나에게 그 기억을 일깨워주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였음을... 그래서일까.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라는 제목에서 미묘한 떨림과 씁쓸함을 느꼈다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이야기들은 잘 들어오지 않았었다. 언제쯤 그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가 나올까, 나올까 염려하는 사이에 소설의 페이지는 한참 넘어갔고 마무리에 다가서서야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의 끝에서 그 말이 나왔던 거다.
그래. 사실 이 소설은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세 쌍의 남녀를 중심으로 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번의 사랑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밍홍, 그 밍홍에게도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가 될까 두려운 저우치, 20대의 트렌디한 삶을 살지만 여자없인 살 수 없는 두팡을 사랑하는 안안, 안안을 사랑하지만 또한 아름다운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두팡, 사랑으로 맺어진 즈핑과 그레이스 부부의 이야기인 거다.
그들의 사랑법과 이별은 트렌디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저녁밥을 든든히 먹고, 배를 깔고 누워 10시대의 드라마를 볼 때의 그런 기분이 말이다. 익숙한 삶의 한 풍경을 재현하지만 조금 더 멋들어진, 그러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이다. 맥도날드, 던킨 도너츠, 쿠가이라든가, 한 번쯤은 봤을 법한 헐리우드의 영화들, 핸드폰 등의 이야기들은 타이완이 아닌 한국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쓰여지고 있다기보단 보여지고 있는 이 소설은 너무나도 드라마를 닮아 있다. 그런 점이 바로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나처럼 소설은 '삶에 대한 진지하고도 엄숙한 통찰'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독자에겐 가벼운 소설이 되고, 소설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현실과의 공감성'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흡족한 소설이 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작가에게 가볍다고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1에서 2, 2에서 3으로 넘어갈 때의 문장 구사력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과 첫 문장의 닮은 꼴은 마치 고리를 형성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화면의 한 장면처럼 작가는 그렇게 문장을 구사할 줄 안다.
조금 더 짧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싶기는 하다. 밋밋한 이야기가 쭈욱 이어지다가 마무리에서 조금 급하게 흐른다. 4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딱 잘라 100 페이지 정도만 줄이고 대신 사건의 흐름을 긴박하게 구성했다면 조금 더 잘 읽히는 소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만한 즐거운 소설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