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 루저, 찌질이 그러나 철학자 - 은둔형 외톨이 칸트에서 악의 꽃 미셸 푸코까지 26인의 철학자와 철학 이야기
저부제 지음, 허유영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서양철학입문서다. 작가가 들어가는 말에서 밝혔듯이 철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너무 어려워 이해할 수가 없다고 푸념하는 사람에게 재미있고 통속적인 철학사 책을 쓰겠노라고 건넨 농담이 이 책의 시작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쓰기 시작한 글이 호평을 받았고 덕분에 출간까지 하게 되었으니 인터넷의 수혜를 듬뿍 받은 책이다.

 

작가는 책이 가진 한계까지 밝혀둔다. 이 책은 통속서이며 독자들의 흥미를 높이는데 주력한 책이자 철학의 성대한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가볍게 마시는 식전주같은 내용이니 원서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이 책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토록 정직한 들어가는 말에 있다. 위선이나 허영을 싫어하고 정직 혹은 솔직함을 미덕이라 여기는 나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싶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기대 이상으로 웃겼고 명확했다. 유머가 넘치면서도 유려한 필력을 자랑하고, 또 그런 필력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철학자들의 핵심사상을 분명하게 요약해냈다. (서양철학전공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꽤나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이면에는 미치광이거나 루저이거나 찌질한 본성이 공존하고 있음 역시 놓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의 업적과 인격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면 위로를 받는다. 나만 미친 짓하고 찌질한 거 아니지? 너네 위대한 척하지만 니네들도 나보다 더 심하게 망가진 거 맞지? 그 어느 잠이 안 오는 밤이면 밤새 이불킥도 하는 거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우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때 용기가 생긴다. 거, 나만 바보 클럽 아니잖아! 

 

완벽해 보이는 서양철학자들의 사상도 또다른 사상가들이 발견할 수밖에 없는 허점을 갖고 있다면 지금의 이 완전해 보이는 자본주의 시스템도 그 언젠가 무너질 허점을 안고 있겠지. 어쩌면 그 허점을 발견하고 싶어 서양철학을 뒤적이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역사, 철학, 시스템은 헤겔의 변증법이 그러하듯 --의 과정을 거쳐 왔으니 앞으로도 그런 과정의 연속이겠지.

 

서양철학은 인간이 가진 사유의 힘이 얼마나 큰지 배우게 하는 동시에 또 그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도 깨닫게 해 준다. 하이데거의 생각처럼 죽음의 가능성이 생존의 진정한 의의를 환기시킬 뿐이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본질에 가까이 가는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해도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존재일 테니. 그러므로 니체의 권유처럼 끊임없이 자아를 초월하는 인생관을 붙잡고 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철학이 가진 힘은 멈춰 서지 않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완벽할 수 없고, 아무리 높아 보여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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