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구미를 당기는 소설이 있었으니, 80년생이 썼다는데 유명 인터넷 서점 추천도서에 올라가서 내내 내려오지 않는 바로 이 '달려라, 아비'였다. 도대체 어떤 작가 그리고 소설이기에 이리도 주목을 받는 걸까. 내내 궁금했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80년생이 얼마나 좋은 소설을 썼을까 하는 의문어린 시선이 있었다. (나이에 대한 이 지독한 편견이여~!)

며칠 전 우연히 구립 도서관에서 이 소설집을 발견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빌려 읽어내려갔다. 그러나 나는 첫번째 페이지에서부터 과연 80년생이, 하는 그 시선을 버려야 했다. 정말 잘 쓴 '소설들'인 거다. 이런! 낭패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질투인지, 동경인지 모를. 차마 어떻게든 설명해 낼 수 없는. 그리고 그저 머리를 스치듯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이만 먹는 사이 사람들은 성장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사실 김애란의 소설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할 위대한 가치를 담고 있는 명작'이어서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그녀만의 시선과 문체로 해석해내고 있으며 이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이십대 중후반기의 보편적인 세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그리고 서울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십대 중후반 소시민적인 노동자의 삶의 현주소를 이리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느냔 말이다. 농을 치면서 하지만 또 그렇게 진실할 수 있냔 말이다. 마치 때론 소설 안에서 거울을 보듯 이렇게 똑닮아 있을 수 있냔 말이다.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김애란의 소설을 평단에서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툭 나타난 김애란에게 80년생과 그 즈음의 전후 세대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현실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과 우울함과 답답함을 소설로나마 공감하고 치유받음을 수 있음에. 그리고 그 세대를 형상화하여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남겨줌을 말이다.

그녀보다 조금 먼저 태어난 나는 그녀가 그린 소설 세계 속에서 위안받으며 질투하며 웃으며 울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녀가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소설 안의 어떤 정직이 (앞으로도 계속) 그녀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제고, 곧 다시 볼 수 있도록".

덧붙임- 김애란에 대해 이렇게 오버된 반응을 하는 건 몇몇 작품들 속에서 거울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 거다. 타자화되지 않는 자아화...의 비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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