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심은 있지만 안다는 생각이 안 드는 분야가 있다. 몇 권의 책들을 읽어보아도 여전히 잘 모르겠고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기도 어렵다. 내게 미술은 그런 분야이다. 미술관을 좋아해서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등을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다. 오르세 미술관 전시회나 보테로전, 유명한 국내 화가들의 전시회에 가 보기도 했다.

여전히 미술에 대한 지식은 늘지 않고 내 취향에 맞는 그림만 좋아한다. 솔직히 말하면 전시회의 그림보다는 전시회에서 파는 그림엽서나 마그넷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런 탓에 나는 절대 교양인이 될 수는 없구나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다른'이란 말이 붙여졌음을 알았지만 원제 역시 "보는 방식들"이니 크게 걸리지는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목차가 없다. 1-7이라는 숫자가 매겨져 있고 7장이 모두 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세 편은 이미지만 있다. 네 편도 이미지와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전체의 페이지수도 190쪽밖에 안 되는데 글마저 적으니 빨리 읽을 수 있다. 물론 함께 실린 이미지를 천천히 감상하며 읽는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1장에서 벤야민의 영향을 받았음을 대 놓고 밝히는 이 책은 이러한 미술작품이 왜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미술작품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가에 접근한다.

우리가 왜 원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누드화가 왜 그러한 방식으로 그려졌는지, 유화가 왜 흔히 물건들을 묘사하는지, 유화로 그려진 인물화에 어떠한 배경들이 함께 포함되는지, 그들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나아가 유화가 현대의 광고와도 대비될 정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까지 밝힌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미술에 관해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음(10쪽)"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에 남아 있는 미술작품이 갖는 가치가 단지 고차원적인 예술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을 옮기며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만인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환경은 개인으로 하여금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태와 현재 그 자신의 상태와의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모순과 원인을 충분히 깨닫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인 투쟁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의 무력감과 함께 뒤섞여서 백일몽으로 융해되어 버린 선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야 한다.

왜 광고가 그럴듯해 보이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광고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과 광고가 약속하는 미래 사이의 간극은,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 자신이 느끼는 현재의 처지와 그가 되고 싶어하는 처지 사이에 벌어진 간극과 일치한다. 그 간극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실제 행동과 생생한 경험에 의해서 다리가 놓여져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은 매혹적인 백일몽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171-172쪽)

덧-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은 <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가 생각이 났다. 유명한 화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들의 작품을 조금은 삐딱한 시선에서 쓴 책이다. 나는 이런 책들에 끌리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