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지난주 일요일엔 비가왔다. 억숙같이 퍼붙는 심술맞은 녀석이 아니라 한 우산속에 두명이 들어가도 옷깃이 젖지 않을만큼, 딱 그만큼의 비가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찾은 해운대, 빡빡한 시간에 쫒겨 멋찐 창밖 풍경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식사 시간을 뒤로 하고 몇주전부터 예매하며 기다려온 공연을 보러갔다.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 오닐의 콘서트 . Richard Yongjae O’Neill <Lachrymae, 눈물>
공연장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오래된 곳일수록 그 냄새는 더욱 짙은데, 그 중 비오는 날은 제대로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느긋한 휴일 저녁, 내리는 비와 오래된 공연장, 그리고 구슬픈 비올라, 그것으로 연주될 "눈물"..할 '한 恨'이라는 한국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와의 만남은 한곡 한곡 음악이 끝날때 마다 남겨진 여운 때문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방문한 어떤 분의 서재에서 그 여운을 또 만났다. 페이퍼가 끝나는 곳에 남겨진 짧지 않은 여운..
여운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로 마침표를 쓰지만, 그 마침표 대신 흰색의 공간만 덩그러니 남겨진 그 페이퍼를 보니, 곡이 끝나도 쉬이 활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날 그곳의 냄새와 분위기 이젠 멀리서 꺼내야하는 내 느낌까지 고스란히 생각났다. 내가 보낸 메세지에 축쳐진 그 사람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그 몇%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허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는 '여운'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우울하고 축축 쳐지는 단어인데, 실상 그뜻은 위와 같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