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 ...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쨋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었습니다.  17-18

 중학교 2학년짜리에게 DVD를 보내면서 걱정이야 왜 없었겠습니까? 딸이 혹시라도 복수 같은 남자를 만나 상대방의 부족을 채워주겠다고 하면 어쩌나, 말기암 환자를 사랑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러다가 인생 망치면 어쩌나... 뭐 이런 걱정을 했지요. 이런 과도한 걱정도 부모의 기본'업무'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번 이런 '오버'를 하면서 딸을 앞질러갔던 것이 저의 문제였습니다.


착각할 수 있는 나이에는 착각을 하면 됩니다. 그 착각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헤어나올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늦어진다면? 늦어지면 됩니다. 10대나 20대에는 인생이 남들보다 3~4년 늦어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몇년 빠르고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우리 딸만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한 욕심입니다.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迷妄)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24-25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년이 지나면 머리가 굳는다고 믿는 분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경험을 좀 하고 교과서를 보면 그런 지식이 왜 필요한지 아는 상태에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부의 이유를 알고 나면 공부가 훨씬 쉽고 편해집니다. 중고생들에게 공부를 막는 최대장벽은 '왜 공부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이유를 억지로 알려줄 방법은 없습니다. 그걸 억지로 알려주려다보니 애들이 자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41-42

 

 그러나 교육의 목적이 '전가의 보도'는 아닙니다. 규제하려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야 할 이유나 치마를 줄이고 싶은 이유를 학생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권을 제한받는 사람에게 입증 부담이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무엇보다 청소년에게는 기본권이 없다는 심각한 오해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당연한 주체입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인들 모두 '청소년은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다'라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공부 때문입니다. 45

 하비 밀크는 웃으면서 여유있게 반문합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프랑스어를 가르치듯 그냥 가르치면 되는 겁니까?" 밀크는 이에 덧붙여 자신은 지독한 이성애자 사회속에서 이성애자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성애자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왜 이성애자가 되지 못했느냐고 질문합니다. 자신이야말로 성적 지향이 교육으로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산 증거란 이야기입니다.  


 하비 밀크의 반문은 정곡을 찌른 것입니다. 이성애자의 눈으로 볼때 동성애, 특히 섹스를 통해 분명하게 밝혀지는 성정체성은 확실히 불편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생활약식이 확산 될까봐, 혹시 우리 아이가 그렇게 오염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성애자에 속하는 다수자들은 먼저 이렇게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누가 돈을 준다고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그럴 수가 있을까? 멋찐 꽃미남, 이제는 전설이 된 히스레져가 나를 유혹하면 나는 과연 바지를 벗을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은 그럴 수 없을 겁니다. 저도 그럴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의 세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합니다.  65

 일부 법학자들은 우리 헌법 제36조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혼인과 가족생활은 오직 양성 사이에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리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 권리의 극대치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헌법은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제도의 최소한을 규정한 것이지, 최대한을 규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 헌법 규정을 만든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법률적 차별에 대한 반성으로 양성평들을 규정했을 뿐, 성별에 관한 평등은 오직 양성 사이에만 성립한다고 제한한 것이 아닙니다. 73

 동성애자들의 인권문제는 전적으로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성애자들이 관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내가 우연히 이성애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약간 높은 위치에 올라서 '너희들을 받아주겠다'고 선언할 수는 없습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고 사는 권리들을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인권을 아주 쉽게 정리한다면 결국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보장받기를 원하는 그 권리들을 다른 사람들도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올바른 덕목입니다. 88

 세상에는 따귀 말고도 사랑과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익혀나가는 게 바로 인생입니다. 그 많은 표현방식을 연구하고 익히는 대신 따귀 한대로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 우리 드라마 작가들과 PD들의 태도는 딱 한 단어, '게으름'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97

 「가족의 탄생」은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메씨지를 전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족'으로 평가받고 그와 동등한 보호를 누려야 합니다. '제도권'의 가족에 대해서 무책임하라는 게 아니라,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사랑과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말 못할 고통을 겪는지 모릅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에 대한 환상이 큰 만큼, 딱 그만큼, 현실의 가족은 지옥이 됩니다. 125

 데이비드 파이퍼 교수의 말처럼 장애란 정상에 뒤떨어진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남과 좀 다른 특징을 가진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157

 저는 이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들을 중학생인 제 딸에게 보여주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습니다. 

스포츠마싸지 업체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장면이 문제라고요? 이미 제 딸 주변에는 어른들의 세계에 노출되어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는 아이들이 존재합니다. 성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도 부지기수입니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판국에 단순히 '안 보여주는 방법'으로 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것은 없습니다. 부모들은 모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변할 마음의 준비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271-273

 외국인에게 온정적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외국인들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가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무슨 시혜를 베풀자고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러들여 저임금으로 주로 3D에 속하는 일을 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313

 우리나라 여고생이 외국계 한국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이미 영화 「반두비」 사례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일한국인들이 겪는 차별에 분노하면서도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외국인이나 외국계 한국인들에 대해 무감각한 것은 우리 내면의 깊은 이중성일 뿐입니다. 320

 지금 우리 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므로 안심해도 된다는 생각보다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여러 책에서 강조했다시피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가는 우리에게 국방, 교육, 사회보장, 치안, 사법 등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서 인권의 유린이 시작됩니다. 국가를 고맙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도로, 언제든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이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해서는안됩니다. 349

 하루에도 열두번씩 상대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심심치 않게 거짓말도 합니다. 내가 봐도 추한 모습인데, 그 통화 내용을 다른 사람이 듣는다고 생각해봅시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국가권력에 의한 사생활 감시는, 단순히 나의 '비밀'이 다른 사람 또는 국가기관에 알려진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나의 발가벗은 '인간성'이 도청을 통해 알려진다는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혼자 훔쳐본 권력자는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착각하게 되고, 한번 맛들인 그 놀라운 정보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351

 실제로 우리 인간들의 DNA는 99.95%가 동일하고 오직 0.05%만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 0.05%에서 우리 모두의 다양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그 사소한 다름에 기초해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말살하려던 역사성의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렇게 열심히 죽였는데도 언제나 생존자는 남았습니다. 제노싸이드를 통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시도는 끔찍한 후유증만 남겼을 뿐입니다.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걸 알고 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집니다. 356


+

평소 내 생각이 옳다라고 이야기 했던 몇몇의 판단은 틀렸다. 

틀렸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려들지 않고 '그래도'란 말로 구차한 이유를 찾으려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