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에 어울리는 - 이승은 소설집
이승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승은 소설집, <오늘밤에 어울리는>

“세련되고도 정제된 방식의 개성적인 울림”을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등단작 「소파」와 미발표작 「찰나의 얼굴」까지 총 8편의 작품을 담은 작가의 첫 소설집입니다.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등장해 식사를 하거나 파티를 즐기는 동안 일어나는 대화가 소설을 이루고 있습니다. 인물들의 관계는 정물이나 소품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고 대화에서 드러나는 것들과 나란히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등장인물들은 적극적인 행위로 사건을 끌어가지 않지만 위태로운 모빌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관계는 변화해가고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그 변화는 분명해지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것들은 영영 알 수 없고 작가가 던진 실마리들도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읽고 나서도 그 위태로운 긴장감이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독자가 계속해서 감정이나 질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매력적인 소설. 새로운 한국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의 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보미, <우연의 신>, 현대문학 핀 시리즈

1911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진 조니워커 화이트라벨을 찾아 프랑스를 방문한 보험 조사관 ‘그’와 뉴욕의 예술재단에서 일하다 죽은 친구의 유품을 수령하기 위해 대학시절을 보냈던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의 만남을 그린 경장편 소설.
전직 경찰 출신의 우수한 보험 조사관인 그는 ‘일과 관련된 대상을 ‘의미화’해서는 안된다고, ‘의미화가 한 번 일어나면 그가 찾아야 하는 어떤 것은 이미 오염되어버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쩐지 직장 내에서 겉돌고 있는 그녀는 ‘과거에 붙잡히는 게 싫었다. 그건 그냥 한 때 주어지는 삶이었고, 이제는 지나가 버렸고,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말하면서도 떠나온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습니다.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이 마주치는 우연. 이후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손보미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한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에 대한 정보는 소설 속 인물들의 행로와 감정에 풍부한 실감과 상상력을 더합니다. 우연이 삶을 돌려 세울 때 그 자리에 멈춰 선 인물들이 떠올리는 건 무엇일까요? 서로를 내버려두듯이 함께 걷는 마음, 개인의 의지보다 더 큰 질서에 대한 희망은 아닐까요? 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빼어난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최승린 지음 / 난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수린,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노래를 부르세요>, 난다
2014년 등단한 작가 최수린의 첫 소설집을 소개합니다. 10편의 단편 속에는 인터넷 프리미어리그중계업체 팀장으로 일하는 전직 축구선수, 죽음을 앞둔 은퇴한 메이저리거, 헤어진 연인과 록스타의 공연장을 찾은 남자, 어중간한 재능으로 자신감을 잃은 사진작가, 아내의 유품을 찾기 위해 소원한 아들과 일본 여행길에 오른 남자처럼 ‘패배’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심정을 떠올리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건 우리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그런 시간을 지나왔거나 지나고 있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실패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그런 의미조차 사그라진다. 모두가 실패자가 될 때, 그래서 누구도 실패자가 아닌 때가 온다.’ 먹먹하게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위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자신을 깨닫게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책을 펼쳐보길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진주 #진주문고 #서점원추천책 #김유정문학상수상작품집
.
.
#한강작가 #작별 #단편소설
.
.
‘너무 놀라지 마. 엄마가 눈사람이 되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도 몰라 잠깐 그렇게 됐어. 아까 조금 눈이 올 때 잠깐 벤치에 앉아 있다가.’
.
.
깜박 졸고 일어났더니 눈사람이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담담한 묘사 덕분에 동화나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일처럼 이야기가 다가왔어요. 눈으로 뭉쳐진 손가락 끝마디가 바스락 무너지는 감각이나 눈물이 고였던 자리가 움푹 패이는 감각, 옆구리부터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감각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서늘하고 투명한 슬픔을 떠올려요.
.
.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소설의 서사적 육체를 통해서 슬프도록 아름답게 재현해놓은 작품’이라는 심사평도 좋지만 작가가 그려놓은 감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쌀쌀해지는 지금 읽어보길 권해드립니다.
.
.
권여선, 이승우, 정지돈 작가 등 다른 작가들의 후보작들도 기대가 됩니다. 아직 여운이 가라 앉지 않아서 숨을 돌리고 더 읽어보려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의경 소설, <쇼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동시대에 다시 풀어 쓴다면 어떨까요? 내 생각과 내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을 담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의경 작가의 첫 소설집 <쇼룸>에서는 물건으로 설명되는 인간의 삶을 그려냅니다. 집과 옷, 음식, 소비되는 시간으로 내가 설명된다면 반대로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은 근사한—근사해 보이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삶에서 가성비와 가심비 사이의 최선의 선택지로써 다이소와 이케아를 선택합니다.

계란절단기나 레몬즙짜개, 크로파르프 소파와 헬머 서랍장, 고시원과 전세 보증금을 통해 확인 가능한 정체성은 종내 슬픔을 동반하게 합니다. 소비가 “삶이 아름답다고 착각하게 하는 착시이자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마취”인 것도 있겠지만 이케아 가구마저도 사치라는 소설 속 인물의 고백을 마주하는 지점에서 ‘소비하는 인간’이 아니라 소비로 설명되지 않는 여백을 읽습니다. 환하고 따뜻한 쇼룸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제 자신의 슬픔을 겹쳐보기도 했어요.

다이소와 이케아의 소품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매장을 함께 걷는 듯 생생함을 느낄 수 있어요. 맞아 그거그거 하면서요. 동시대를 담아낸 수작으로 <쇼룸>을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