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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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은 지평 너머가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 아직 모르는 곳이 있다는 것, 더 알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발견의 기쁨은 미지의 기쁨. 존 버거의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그의 태도는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워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는 화가가 물감을 다루듯이 생각들을 다루고 있다˝ 대상과 풍경을 묘사하다가 관계를 역전시키는 대목--새털구름을 묘사하다가 뉴스를, 다시 새털구름이 바라보는 물 위에 떠 있는 자신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언어, 예술, 시의 기원을 떠올렸다. 특히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는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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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늘 관계 속에 노출 되어있는 터라 끌리는 제목이기도 했고. 일요일이니까 손에 잡고 술술 읽어 내려갔다. 짧은 책. 사라짐, 드러내지 않기의 사유를 밀고 나아간다. 마지막엔 사라짐의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몸짓, 미소, 이야기되지 않은 말의 이면에서 오가는 침묵이 중요하다.˝

˝우리는 비로소 우리와 타자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투사와 내사의 영원한 유희-증명과 인정의 치킨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비밀과 미스터리, 그림자와 틈.˝

˝우리가 형식, 지위, 발견, 존재가 아니라 몸짓, 움직임, 추구,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몇 개의 문장들이 내 속에 남았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 숨긴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 타자의 내면을 인정하고 관찰하고 유예함으로써 존중을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 존재론의 강박을 넘어서 관계론을 사유하게 하는 단초가 아닐까?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을 다시 펼쳐봐야겠다는 생각. 김상봉 교수의 <서로주체성의 이념> 생각도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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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2017-03-2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내지 않기‘라는 것이 단순히 사라짐이나 숨기가 아니라 대중-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타인을 읽어내지 않기‘로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면이나 비밀이 존재의 깊이를 만들어 낸다면 드러내지 않기와 사라짐의 기술이 관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리란 것도요. 제가 요즘 그런 고민을 하는 중이라 더 그렇게 읽힌 걸 수도 있지만요.
 

‘밝고 조용하고 맑고 그리운 문체, 조금은 응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 엄격하고 깊은 것을 담고 있는 문체, 꿈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처럼 분명한 문체.‘

소설 내에 인용된 하라 다마키(原民喜)의 문장론이 맞아떨어지는 캐릭터와 묘사. 피아노 조율사의 이야기-소재가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읽었던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 <형태뿐인 사랑>이 묘하게 겹쳐져서 떠오르네-의족을 디자인하게 된 산업디자이너의 이야기.

소재가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주제가 형상화를 넘어 도식화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럼 인물의 내면, 인물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걸까? 두 소설은 모두 그랬다. <양과 강철의 숲>에서는 단정한 캐릭터가 소재와 호응하며 드라마를 만들어내고는 있지만 깊이에서는 아쉽다.

비슷한 아쉬움을 받았던 <배를 엮다>도 생각나네-사전제작자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대중소설과 본격소설이 나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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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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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최민석 작가의 베를린 체류기. 가벼운 글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꽤 시간이 걸려 읽었다. 90일간의 일기에서 문장 너머 있는 생활을 떠올리다보니 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매일같이 기록하는 동안 변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처럼 사람은 싫든 좋든 누군가로부터,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단순한 하나의 명제를 시간을 들여 관계를 맺으며 새겨나갔다는 생각.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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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를 위해 펼쳐 들었다가 한달음에 완독. 마르크스를 읽자‘가 아니라 세계와 대상을 사유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라고 읽을 정도로 폭넓게 와 닿는 지점이 있었다. 두 학자가 서로가 읽은 마르크스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이시카와 선생의 다른 책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뒤에는 학생들의 강독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기도 했는데 이런 것도 좋다.

서삼독이라고 신영복 쌤이 그러셨는데 저자, 배경, 우리가 읽어나가는 지점을 함께 읽기엔 마르크스가 지금 딱인 듯. 공산주의로써의 맑시즘이 아니라 공동체주의로써의 맑시즘. 이데올로기로써의 맑시즘이 아니라 도구와 실천으로써의 맑시즘.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것.

--

맑시즘이 있기 이전에 맑스가 있었고
맑스가 있기 전에 한 인간이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에서 토요일 저녁 쏟아져나오는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들을 집요하게, 연민하던,

‘자본론‘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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