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봄 무렵에 나는 연천의 xx사단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날 저녁 훈련병들을 위문하겠다고 서울 모 교회 선교단이 왔다.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모두 모여, 그들이 펼치는 노래와 율동을 즐겼다. 집을 나와 몇 주만에 보는 민간인이자 여자들이라 호기심이 대단했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그들은 분위기를 바꿔  '우정의 무대' 주제곡을 연주했다. 분위기는 이내 가라 앉았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 놓고~~'하며 시작하는 노래에 거기 모인 훈련병들은 즉각적인 반응들을 나타내었다. 훌적였던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이젠 내 옆에 앉은 아이도 훌적였다.  이젠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코 끝이 말할 수 없이 찡해졌다. 전염병 같았다. 부끄럽지만 그날 많이 울었다. 거기 모인 애들은 다 울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자연스레 감추어 졌다. 군인들은  '엄마'라는 단어에 너무도 약하다...

이 일화는 내가 가장 최근에 보인 눈물에 대한 기억이다. 나는 눈물을 잘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남에게 약점을 보이는 것 같아 싫다. 위 기억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흘린 눈물이다. 그런데 오늘 김훈 씨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산문집을 읽고서 울어 버렸다.

훈련병 때의 울음은  '엄마' 때문이었지만, 이번엔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정말 어쩔 수 없이 울었다. 김훈 씨의 글이 이토록 가슴을 찡하게 만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군더더기가 완전히 제거되어 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 감추려 해도, 그 내면의 본질은 그의 시선에 의해 잔인할 정도로 간파된다. 그가 말하는 우리의 '삶'이 그토록  '절박한' 것이었나 하여 목이 메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힘들게 직장에 나가 벌어온 돈으로,  먹여주시고 학비대주시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서 아직 한참 멀었음을 뼈져리게 느꼈다. 밥달라고 보채고, 대학 등록금 내야 한다고 조르고, 용돈 적다고 투정부리고 할 때 마다 아버지가 느끼셨을 부담감과 책임감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조금은 짐작이 간다.

하루 하루의 삶의 가치를 강조한 그 어떤 책 보다도, 이 책이 가져다 주는 삶의 가치는 숭고하다. 그의 표현대로 뜨거운 흰 쌀밥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은 이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자된 도리이며, 아버지 된 자의 책임인 것이다. 불 속을 해메대가 순직한 아이 하나를 둔 소방관의 죽음을 보고서 허탈감을 느끼고 그 희생 정신에 눈물이 났지만, 현재 이 땅의 대다수 아버지들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았고 또한 그 모습이 나의 미래 모습인 것 같아 서러웠다. 이쯤 되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았는데 또 부끄러워 얼굴을 한동안 못 들었다. 눈이 계속 빨갰다. 왜이리 감정이 추스려 지지 않을까. 이렇게 주체할 수 없게 슬픔이 밀려오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김훈 씨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엄청난 혼이 실려있는 듯 하다. 글을 접해본 사람들은 그 느낌을 알 것이다. 정말 이상한 글들이다. 그토록 가슴을 울려도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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