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4월 4일자

[책읽는 경향]경북에서-들꽃을 엿듣다

시가 읽을거리에서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독자와 소통하지 못한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소통이 어려운 것은 난해하기 때문이다. 복잡 미묘한 정서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리라. 어쨌든 독자 없는 시는 불구다. 독자가 다가갈 수 있는 시가 아쉬운 참에 김윤현의 시집 ‘들꽃을 엿듣다’(시와에세이)를 읽는다. 가슴에 찡한 울림이 전해온다. 야생화를 제재로 하고 있는 60여 편의 시에서 맑은 영혼과 은은한 향기가 묻어난다.

야생화는 오염되고 건조한 우리 마음에 수많은 언어의 빛깔과 향기를 보낸다. 시인은 그것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담아낸다. 거의 마술에 가깝다. 그만큼 가까이 다가가 야생화의 순수한 몸짓과 영혼을 엿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시인은 꽃잔디를 두고 “자신을 위해서는 작게 가지려 하고 /남을 위해서는 크게 하려는 삶이다”. 그래서 “꽃을 피우지 않아도 꽃이다”라고 말한다. 경지에 오른 시심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진지하고 깨끗한 말이 화려하고 힘센 말에 묻혀버리는 수가 종종 있다. 김윤현의 시가 그렇다. 그는 야생화 같다. 시의 향기를 담으려고 묵묵히 애쓰는 시인이다. 눈길 많이 가지 않는 지방 어느 시인의 시에서 삶의 무한한 의미를 발견한다. 시가 아직도 유효함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 신재기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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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송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면
 나지막하게라도 꽃을 피우겠습니다
 꽃잎을 달고 향기도 풍기겠습니다
 이름을 달지 못하는 꽃도 많습니다
 토담 위라고 불만이 있을 리 없지요
 메마르고 시든 일상에서 돌아와 그대
 마음 환하게 열린다면 그만이겠습니다
 몸을 세워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 살아갑니다

출처 : <들꽃을 엿듣다>(김윤현,시와에세이) p.11에서

 

* 개망초

가뭄에도 몸을 낮추어 견디고
목이 타는 햇볕에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이제 삶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외진 곳이나 바로 서기 불편한 곳에서도
말없이 아름답게 피는 개망초를 보며
인생을 더 긍정하기로 했다

보아라, 비탈진 산하에서도
고개 끄덕이며 사는 것들은 다 아름답지 않은가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며
낮은 곳에서도 꽃을 피우는 개망초를 보며
편편한 들판이 아니라 해도
가지런한 논둑이 아니라 해도
다 받아들이며 살기로 했다

출처 : <들꽃을 엿듣다>(김윤현,시와에세이) p.2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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