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8년 3월 4일자

[책읽는 경향]경남에서-우리들의 하느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 심해질 듯하지만, 세상은 어디까지 내달릴 수 있는지 한번 보자는 듯한 양상이다. 스승의 존재는 이럴 때 더욱 그립다. 나는 작년에 작고한 권정생 선생이 만년에 남긴 산문을 모은 ‘우리들의 하느님’을 권한다. 내가 가진 책은 마분지 재질의 표지가 너덜너덜해지고 본문은 누렇게 변색돼 볼품 없지만, 지난 10여년간 때때로 이 책을 들춰볼 때마다 받았던 가르침과 위로는 작지 않다.

이 땅에서 70년을 살다간 선생의 주업은 ‘앓는 일’이었고 부업은 책읽기와 글쓰기였다. 선생은 방대한 분량의 독서를 하셨지만, 당신의 글은 가장 기초적인 어휘로 이루어져 있고, 담백한 입말이 살아 있을 뿐 문채(文彩)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선생의 글에는 힘 없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진한 슬픔이 있다. 종교와 권력의 이름으로 군림하는 것들에 대한 노여움이 있고, 이 허망한 세계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한 고통이 배어 있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의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출판사로부터는 ‘우리 책이 그런 방식으로 팔리길 원치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고, 선생으로부터는 ‘아이들에게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몇십만 부의 판매량을 눈앞에서 놓쳐버린 저자와 출판사의 ‘바보 같은 선택’은, 돌이켜보면 지난 십수년 동안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이 책의 정신적 가치를 지켜낸 혜안이었다.

〈 이계삼 밀양 밀성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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