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08년 3월 22일자

참된 독서는 완독보다는 총체적 이해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여름언덕·9800원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모범 독서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이라는 상식을 뒤집는다. 나아가 파리 8대학교의 문학교수면서 정신분석학자이기도 한 지은이는 반드시 어떤 책을 읽어 보아야만 그 책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하거나 얘기조차 들어보지 못한 책들에 대해서도 견해를 제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독서 문화를 뿌리째 흔드는 반달리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겸손해진다면,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도 용기를 내어 말해야 할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고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극히 일부”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라면, “언제라도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놀랍게도 지은이가 말하는 이상적인 독서는 대충 훑어보거나 흘낏 제목만 보고 마는 일이다. 그러면서 “책의 개별성을 넘어 그 책이 다른 책들과 맺는 관계들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진정한 독자라면 바로 “그 관계들을 파악”하고자 해야 하며 교양인이 알아야 하는 것은 책들간의 “소통과 연결선”이지 “특정의 어떤 책”이 아니다. 기상천외의 발언 같지만, 책들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굳이 모든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각종 서평이나 소문을 통해 또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 독서 아닌 독서를 하고 있다.


전통적인 독서인이든 간접적으로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비독서인이든 자신의 내면에는 한 채씩의 이상적인 도서관이 있고 거기엔 또 한 명의 이상적인 사서가 거주한다. 그래서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나 아나이스 닌의 소설을 나름으로 분류할 수 있고,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자신이 습득하고 있는 “총체적 시각” 속에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읽지 않은 저 작가들의 작품을 국가(언어권)와 장르별로 분류하고 전체성 속에서 평가하며, 자신의 호오를 발동한다. 읽지 않고서도!







 


» 장정일의 책 속 이슈
 
사람들이 보통 책 얘기를 할 때는 그 책에 대한 내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책이 제공한 모티브를 얘기하는 것이다. 때문에 완독 여부가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입장권이 아니다. 오히려 지은이는 폴 발레리가 그랬고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듯이,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자기 말을 하기 위해서는 책을 멀리 하거나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이 좋다고 유혹하기까지 한다.



복거일이나 고종석의 저작을 읽으면서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책을 온전히 읽은 게 되지 못한다. 참된 독서란 내 앞에 주어진 개별적인 책을 읽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책을 생성한 유·무형의 생산 현장 전체를 읽는 일이다. 강조하기가 새삼스러울 만큼 평범한 이 교훈이야말로 피에르 바야르가 말하고자 했던 역설적인 주제라고 감히 말한다면, 지은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오독일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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