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칼럼]정치의 높은 차원
입력: 2008년 03월 26일 17:54:58
 



 

이라크 전쟁 초기에, 유럽에서는 한 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감안하여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농담 비슷한 견해들이 개진된 일이 있었다. 미국에서 시작하여 현재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금융위기를 보아도 오늘의 세계에서 한 나라의 일이 그 나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번의 지명전에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나선 것은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사의 새로운 전기, 새로운 열림을 신호하는 것으로도 보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흑인으로서 현실적 당선 가능성을 가진 최초의 대통령 입후보자가 될 수 있고, 물론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또 그의 출신과 성장 배경은 지금까지의 정치 지도자의 상례를 벗어난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 유학한 케냐인이고 그의 어머니는 백인 미국인이었다. 아버지는 그 후 이혼하고 다시 케냐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하여 자카르타로 옮겨 갔다. 이에 따라 그는 여섯 살부터 열 살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교육 때문에 하와이의 조부모께로 돌아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8년 간 백인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정치의 이상’ 보여준 오바마

자서전적 저서에서 그는 고등학교 과정 등에서 자신을 국외자로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 데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다. 대학에서 그는 인종주의의 불의에 항의한 리처드 라이트나 말콤 엑스와 같은 미국의 흑인 작가와 사상가들, 또 프란츠 파농과 같은 국제적인 민족해방 사상가들의 저작을 읽고 흑인과 진보주의 동아리에서 ‘배반자’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법률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시카고의 흑인가에 살면서 그들과 애환을 함께했다. 그가 읽고 공감한 것은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작가와 사상가의 저술이었지만 그는 반항 일변도의 입장이 피곤하고 공허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기존 사회에의 동화도 일방적 요구였다. 그가 가장 크게 공감한 것은 말콤 엑스의 ‘자아재창조’의 개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미국인으로 정체성을 구축해가면서도 케냐의 아버지를 잊지 않았다. 그가 케냐를 방문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간 다음이지만 그는 케냐에서 그의 이복형제들의 존재를 확인한 뒤 그들을 만나고 케냐에 있는 그의 뿌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 뿌리의 다른 가지들인 그의 이복형제들은 교육이나 혼인으로 독일, 영국, 러시아 등지로 연결되었다.

이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오바마의 인종적 배경이다. 그러나 이 점은 지금까지 정식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다가 지난 18일 필라델피아에서의 연설로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가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종 문제 자체보다 그가 속한 시카고의 트리니티 교회의 제러마이야 라이트 목사와의 관계였다. 쟁점이 된 것은 라이트 목사가 흑인들과 세계에 대하여 저지른 미국의 잘못을 언급하면서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애국 송가의 구절을 뒤집어, “신이여 미국을 저주하소서”라고 말한 일이었다. 오바마는 있을 수 있는 정치적 대가에도 불구하고 라이트 목사와의 관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설명했다. 라이트 목사는 그를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이웃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미국 흑인의 역사적 고통을 성경에 이야기되어 있는 수난의 기록과의 관련 속에서, 더 넓은 인간적 깊이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오바마는 동시에 라이트 목사의 극단적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자신의 거리를 분명히 했다. 흑인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분노보다 공동의 노력으로 그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다-그는 그의 정치적 입장을 이렇게 해명했다.

오바마의 연설에 대한 반응은 착잡할 수밖에 없겠지만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그의 연설이 미국의 정치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고 높이 평가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해결을 모색하는 생산적 토의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이 연설이 인상적인 것은 정치를 더욱 인간적인 사회의 실현이라는 이상으로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법 앞에서의 평등한 시민적 권리” “자유, 정의 그리고 연합 또는 하나됨”은 미국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오바마는 이 사실에 언급하면서 특히 인민의 “더 완전한 연합(하나됨)”을 기하려는 것이 헌법 제정의 목적이라는 미국 헌법 전문의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언급한다.

그에게 인민의 하나됨은 더욱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공동 노력을 통하여서만 이룰 수 있는 종착점이다. 국민의 하나됨은 당연한 현실이 아니라 부단히 근접되어야 할 이상인 것이다.

이번 연설에는 물론 더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 과제에 대한 언급도 들어 있다. 흑인 그리고 모든 계층 사람들의더 인간적인 삶의 확보를 위하여 그들은 고르게 의료, 교육, 직업, 복지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또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기업 이익의 추구만을 생각하는 기업 문화를 바로 잡아야 하고, 그 로비 활동에 좌우되는 정치 체제를 더 민주적이고 투명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신호될 것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바마의 필라델피아 연설에 대한 반응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단순화된 인종주의나 애국주의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반응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논평 이외에도, 민주당 소속의 뉴멕시코주 지사 빌 리처드슨의 오바마 지지 선언은 그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리처드슨은 클린턴 정부에서 에너지 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고 힐러리 클린턴 의원이 그의 지지자로 꼽았던 사람이다. 그는 오바마 연설의 “설득력, 진지함, 예의, 낙관주의”를 높이 평가하고, 힐러리 클린턴의 ‘네거티브’ 선거전에 비하여 ‘긍정적’이고 ‘희망과 기회’를 말하는 오바마의 입장을 옳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민주당의 지명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되는 데까지 가야 할 길은 멀다. 그러나 그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그는 정치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이기주의의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의 필라델피아 연설 하루 전 이스라엘을 방문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나치에 희생된 150만명의 유태인 아이들을 기념하는 지하공간을 포함하는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 시설을 찾아 헌화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 방문을 “일생의 가장 가슴 아픈 체험”이었다고 말하고, 방명록에 “독일 정부는 유태인 학살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의식하고 독일-이스라엘간의 첫 협의와 더불어 공통의 미래 건설을 다짐한다”고 적었다. 국제 관계에서도 힘과 이익을 넘어서는 양심과 화해와 하나됨의 열림은 존재한다.

〈 김우창/고려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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