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8.3.29)에서 퍼왔습니다.

[독립언론 10년 경향]“위기의 한국 언론,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
ㆍ김우창 교수에게 듣는다

대담 =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와 언론이 주제였지만 대화는 부동산에서 시작되었다. 역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땅은 빠질 수 없는 화제였다. 김 교수는 땅값이 오르면 내야 할 세금이 오르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그와의 인터뷰는 내내 이런 상식 아닌 상식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다.

한국이 낳은 탁월한 사상가라는 상찬을 받는 그였지만, 한국 사회와 언론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담백했다. 사실과 의견이 서로 왜곡되지 않고 균형을 갖추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특별한 한국 사회, 한국 언론에 상식과 원칙의 처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 새 출발한 지 10년째를 맞아 자화자찬보다 이번 기회에 한국 언론 전체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 속에서 경향신문의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취지를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말을 받으며 “신문이 자기가 한 일을 무조건 중요하다고 과장하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고 눈에 거슬리는 일”이라며 “신문에 나는 것은 언제나 공정하고 공공이익에 입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제가 벌써 나온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 정년 퇴임하신 뒤 주로 댁에서 지내십니까.


“ 주로 집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집이 시내와 가깝고, 자연이 좋고, 특히 땅값이 안 올라서 좋아요.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땅값이 오르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팔려고 내놓으면 좋겠지만, 살려고 한다면 세금이 오르는데 왜 좋아하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창동·명륜동·혜화동 같이 서울에서 살기 좋은 데는 땅값이 안 오르고, 혼란스러운 동네는 올라가요.”

- 휴대전화를 사용하시지 않더군요.

“농담으로 하자면, 급한 전화가 있다는 것은 거는 사람이 급한 거지 받는 사람이 급한 것은 아니잖아요. 너무 정보가 많은 게 문제입니다.”

- 매체가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체가 다양해져서 민주주의가 향상됐다고 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어떤 칼럼니스트가 썼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의견이 있어도 반드시 지지자가 있게 마련인데 매체가 많으면 이런 의견을 담느라 정말 좋은 의견이 모아지기 힘들다는 겁니다. 물론 의견 표명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양한 게 좋죠. 그러나 현실적인 해결책은 1~2개뿐입니다. 여러 의견과 방안을 종합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종합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절차가 중요한 것이지, 모두가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은 인터넷 매체에 비해 접근이 선택적입니다. 그것을 부당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기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매체의 다양화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 신문을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습니까. 처음 신문을 대할 때 신문은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신문을 언제 읽었느냐는 물음은 참 답하기 어려워요.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아버지 때부터 읽었던 신문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보았으니 계속 읽었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신문은 네개를 봅니다. 저는 사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이 가장 풍부한 신문을 가장 먼저 보고 그 다음 경향신문을 봅니다. 경향신문은 사실과 의견이 적절하게 있어서 좋아합니다. 의견이 매우 강한 신문은 네번째로 봅니다.”

- 즐겨 읽는 면이 있습니까.

“신문 편집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면 기사를 먼저 보게 돼요. 보통 정치기사를 많이 봅니다. 자잘한 세상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 기사들을 보면 세상 사는 느낌을 받게 돼요.”

- 혹시 신문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자가 되면 이런 것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이라도.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기자가 됐더라면 내게 도움이 됐을 것이란 생각은 했죠. 게을러서 잘 안되는 것을 기자란 직업 때문에 의무감으로 사람 사는 현실에 대해 자세히 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기자란 직업에 대해) 그게 부러운 점입니다.”

-한 마디로 정의해서 신문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신문을 가지러 나갈 때 ‘아직도 세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것이 신문입니다. 헤겔이 신문은 현대인의 기도서와 같다고 했어요. 기도서는 아니지만 신문은 세상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물론 잘못된 모양도 있고요.”

- 건강한 시민이라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문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신문을 잘 안 읽는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보느냐 이런 말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신문을 안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신문 외에 정보매체가 많다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각이나 청각 매체에 비해 정신집중이 더 필요한 일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정신집중보다 몸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지요. 또 정보 과다로 정보가 필요없다는 인식도 있어요.”

- 그런 흐름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보십니까. 그런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활자매체의 쇠락은 불가피한 것인가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사고하고 검증하는 습관이 학교나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어요. 말은 문장이 완전하지 않아도 되고, 논리가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글은 논리와 사고에 입각해야 하고 문법도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글마저 사고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 한국 언론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 이미지 시대의 도래 등 언론 환경의 변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 신문의 타격이 큽니다. 게다가 신뢰도도 매우 낮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언론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회의 지적인 힘이 약화됐어요. 그 책임은 언론에만 있다고 보기 힘들지만 언론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투쟁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하지만 그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위기가 완화되고 나면, 사람 사는 방향이 여러 방향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로만 묶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입니다. 옳은 것이라고 해서 주관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옮겨가야 해요. 사실이 무엇이냐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관해서는 의견에 관계 없이 사람들이 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외국신문은 어떤 것을 보십니까, 한국신문과 비교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까.

“외국신문을 보는 게 몇 개 있는데 사실 검증이 중요한 기준으로 되어 있어요. 한국의 경우 정의의 이름일 수도 있고 국익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위해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지요. 사실이란 일어난 일, 틀림없이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요. 사실 보도 여부는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하는 거지요. 이는 사실에 대한 존중이 약하다는 것도 되고,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제가 오래 본 신문 중의 하나가 영국의 가디언입니다. 가디언이 사실을 선정하는 기준은 아주 객관적이에요. 예를 들어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중요한 기사도 아니고, 모두의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경향신문의 오늘 이 기사(3월20일자 1면 ‘반운하=반여당 최대 이슈 부상’)는 매우 좋은 기사입니다. 사실 선정의 기준이 공익적입니다. 그러나 제목 ‘최대 이슈 부상’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대 이슈라면 유권자들이 이것을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공익적인 판단 기준에서는 아주 중요한 대목을 드러냈지만 ‘부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성이 약한 것이지요.”

- 정의와 국익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신문을 만드는 데 있어 항상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국익이 있고, 야당이 생각하는 국익이 있고, 신문도 저마다 다르게 국익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문은 국익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십니까.

“공익이나 국익, 정의가 중요한 가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판적 입장은 늘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인 행동도 국익이나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없어요. 그것이 참으로 정의, 국익이 되려면 실현하는 수단은 정의로운지 봐야 합니다. 정의나 국익이란 것이 책임을 기피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구체적인 예를 말씀 드리자면, 며칠 전 여러 신문에서 대학 강사가 미국 오스틴에서 자살한 사건을 다뤘어요. 비정규직 강사들의 부당한 대접에 공감하기 때문에 유심히 기사를 봤어요. 전적으로 강사들의 처우가 부당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16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호텔에서 자살한 것을 보면 책임 있는 어머니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볼 때 사회정의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어요. 한국이 아닌, 미국까지 가서 자살했으면, 다른 이유도 있을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살하지 않으면 안될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해요. 사회정의의 관점에서만 처리하지 말고 좀더 사실적인 보도를 했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강사 처우 문제로 가버려 충분히 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사회정의 국익, 이런 것이 우리의 사고를 단축하는 역할을 하면 안됩니다. 사실을 먼저 탐색하고,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해요.”

- 신문 역할이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사회를 선도하고 계몽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신문의 역기능으로 사회 갈등을 확대, 증폭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문이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말고 조화로운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이 돼야 합니까.

“계몽, 선도와 사실 보도, 이것들이 모두 어울려야 해요. 그러나 사실 보도가 1차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공익의 관점에서, 사회의 건전성에 대한 관심으로 선정돼야 합니다. 여기에 계몽과 선도가 이미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입장을 지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으로 되기 쉬워져요. 사실을 통해 주관적인 입장을 나타내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지만,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인 입장이 앞서서 공정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 현재 한국 언론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신문에서 공익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신문 각자 나름의 공익에 대한 준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마다 다른 여러 가지 공익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공익이란 것이 자기가 서 있는 입장에서 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티베트 문제가 좋은 예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진압이 공익이고, 티베트 입장에서는 아니겠지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탄압이 옳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문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공익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고려대학교에 있다고 해서 그 대학에 모든 것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제 충성심은 진리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이 신문사 공동체로서 충성심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합니다.”

- 티베트 얘기가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신문 책임자라면 어떤 관점에서 보도하겠습니까.

“티베트, 중국, 세계시민의 세가지 관점을 모두 보도해야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티베트가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와 자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내 개인적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티베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요. 중국의 52개 소수민족이 모두 자치를 원할 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일 넓은 관점, 즉 인간의 공적인 정의와 국가 현실 안에서의 정의, 이것이 어떻게 타협될 수 있는가도 보도해야 합니다.”

- 그러면,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티베트 사태를 올바로 보도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대체적으로 티베트 입장에서 보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요. 현재 세계적으로 공정한 보도라면 티베트 사람들의 소망을 그대로 보도해줘야 합니다. 지금 국내 사정도 그렇습니다.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서 경제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과 복지 등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 이 두개를 모두 고려해서 어떻게 수렴해야 하는지도 보도해야 합니다.”

- 여론의 다양성이 중요한데 일부 보수 언론이 여론을 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행한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시장을 관리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매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전 신문에 쓴 적은 없지만 사석에서는 비판했어요. 정치권력을 통해 다른 신문이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안됩니다. 전 시장을 지지해요. 이런 얘기해도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지원을 통해 한국문학 번역해서 외국에 보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검증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역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아무 책이나 번역돼요. 그러면 그런 지원이 오히려 외국 보급을 어렵게 합니다. 번역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문학이 있으면 왜 외국출판사가 자기 돈으로 번역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 하지만, 시장경쟁도 중요합니다. 지금 열세에 있는 신문들도 제도나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 경향신문이 좋은 신문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경향신문만큼 비판하고 사실보도한 신문은 없었어요. 결국은 좋은 것이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기 바랍니다.”

- 여론형성에 있어 신문이 얼마나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다른 미디어가 그런 기능을 해야 하는지요.

“신문만큼 여론형성에 중요한 기구는 없어요. 인쇄매체의 선택적 기능이 중요해요. 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뒷받침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사회 전체가 깊이 생각하고 지적 규율을 존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특히 시청각 매체를 보면, 너무 여론을 쉽게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방송들을 일본 NHK와 비교할 때 한국 기자들이 너무 급하고 긴박한 느낌으로 보도를 하더군요.”

- 신문의 당파성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파성, 인민성, 이념성은 레닌주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레닌주의의 당파성도 그렇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강조한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계급의식을 강조하고 노동자계급을 중요시한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 받는 계층, 보편계급이기 때문이죠. 보편계급이란 이들만 해방되면 사회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붙여진 것입니다. 현재 이런 고통을 없애기 위한 해결 방식이나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 방식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신문은 모든 사람이 고통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쓰시는 장문의 칼럼에 대해 일부에서는 어렵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신문과 문학의 글쓰기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신문이 사실보도를 훨씬 잘해요. 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쓰는 것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콤플렉스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경향신문에서 칼럼을 실어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문에는)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끌려가다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 글 홍진수·사진 박재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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