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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메리칸 러스트』는 몰락한 철강도시 부엘에 사는 젊은이 아이작과 포의 이야기다. 또한 몰락의 중심에서 그 처음과 끝을 몸으로 겪은 헨리, 그레이스 그리고 해리스의 이야기이며, 몰락한 도시를 뒤로한 리의 이야기다.


아이작은 스스로가 '노인네'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서랍에서 4천 달러를 꺼내 집을 나선다. 어머니가 자살한 후, 누나 리가 집을 떠나고 쭉 혼자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보살폈다. 그러나 노인네는 아이작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5년을 참고서야 아이작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이작은 포의 집으로 향했다. 포는 아이작의 거의 유일한 친구다. 전도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던 포는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어머니의 트레일러에서 밀렵한 고기를 먹으며 그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작고 아이 같은 용모에 말이 없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소유한 아이작과 큰 덩치에 호시탐탐 치기어린 주먹을 날릴 기회만 바라보는 철이 덜 든 포는 몰락한 도시에서 다시 반짝일 리 없는 녹슨 희망을 손에 쥔 동지였다. 그래서 포는 함께 떠나자고 찾아온 아이작에게 함께 떠날 생각은 없지만 조금 같이 걸어주겠다며 길을 나선다. 그리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때문에 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는 사건이다.


제강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철강 소도시 부엘의 제강소가 문을 닫았다. 더불어 도시도 문을 닫았고 도시를 구성하던 사람들의 희망도 문을 닫았다. 이제 부엘은 사람이 사는 집보다 텅 비어 스러져 가는 집이 더 많다. 정원에서 코요테나 사슴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이다. 최저 임금의 일자리를 놓고도 머리가 터져라 싸워야 한다. 능력이나 재능이 있는 사람은 벌써 도시를 떠났다. 그런 것이 없어도 떠날 사람은 떠나버렸지만 그들의 삶은 부엘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여전히 부엘에 남아있는 이유가 그것일 테지. 훌륭한 학업 능력으로 도시를 떠날 수 있었던 리의 말대로 부엘은 이제 '녹 덩어리'일 뿐이다.


"이 나라가 망하고 있는 건 머리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코에 피어싱을 하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야. 개인적으로는 그런 애들을 싫어하지만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진짜 문제는 보통 시민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없게 된다는 거야. 직업을 잃으면 나라는 잃는 거라고."
잠시 등장하는 치안 판사의 얘기처럼 부엘의 사람들은 직업을 잃고 나라를 잃었다. 절망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리의 얘기에서 알 수 있듯 이들에게선 어떤 저항도 없었다. 15만 명의 사람들이 해고됐지만 다들 조용히 직장을 떠났다. 도시 하나를 말아먹고 15만 명의 사람들에게 나라 잃은 것과 같은 무게의 절망을 안긴 누군가가 분명 있었으나 그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았다. 아이작이 부엘의 아이가 아니었다면, 포가, 리가, 아니 그 이전에 부엘이 그렇게 몰락하지 않았다면 아이작의 부모나 그레이스와 해리스의 삶이 그토록 막다른 곳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비극은 부엘의 몰락에서 비롯되었다. 허나 저항하지 않는 그들, 사회적 힘이 개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외면하고 모든 것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진실이 부엘의 몰락보다 앞선 그들 비극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살벌한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중인, 거대 사회에 인생을 저당잡힌 하찮은 개인인 우리에게 부엘이 멀고 먼 미국의 어디일 뿐일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도 자신을 탓하는 15만 명의 사람들이 그저 말 안 통하는 미국 사람들이기만 할까. 내일의 우리 동네 혹은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벌써 그 어떤 절망의 기운이 마음에 피어오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도 '희망'이 있다. 녹슨 집에서 녹슨 꿈을 붙들고 절망하던 그들이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결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을 선택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마지막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다. 그들의 그간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아이작과 포 그리고 헨리, 해리스, 그레이스, 리의 선택과 행동을 열렬한 희망의 시작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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