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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모옌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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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들 무척 재미있다. 

말 그대로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입담 걸쭉한 할아버지 입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허무맹랑한 과장들이 알맞게 첨가된 양념처럼 입맛을 돋군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한바탕 만담을 듣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 저기서 갑작스럽게 툭툭 튀어나오는 느닷없는 욕설이며 농담들이 주는 생생함과 유쾌함은 마치 내가 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마당 한 복판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의 이야기들은 이야기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어떻게 보면 정신없고 산만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이야기 방식이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 속에서 갑작스레 또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졌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뽄새는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를 닮아있다. 거기에다가 맞춤법을 지키지 않은 많은 표현들이 오히려 구수한 느낌을 전해준다.(이 부분은 번역가가 의도적으로 그랬을지는 의심스럽다.) 아니, 그러한 방식이 어쩌면 옛날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 형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소설의 재미는 우리나라 고전 소설의 재미와도 잇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 설명에 따르면 모옌이라는 중국 작가는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이 되는 소설을 썼고, 중국, 홍콩, 일본, 프랑스에서 상을 받은 중국어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라고 하던데, 왜 모르고 있었던 걸까?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모옌이라는 작가가 중국어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작가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집에는 세 개의 단편이 들어 있다.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 '소',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 경주'가 그것이다.

세 작품 모두 유쾌한 웃음을 선사해 주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 같다. 사회 문화적 배경이 다르지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문학이 가진 특별한 능력인가보다. 더우기 자본주의 행태가 곁들여진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 설정이 더욱 다가온다.

위화나 모옌... 새롭게 접하기 시작한 중국의 소설들이 기대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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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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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하루키 소설이었다.

적어도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하루키 소설을 추천해 주곤 했었는데, 어느결엔가 그의 소설에서 박자가 느려진 느낌이 늘었고 그 후론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밤의 거미원숭이가 소설이었던가?)

어쨌든,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 때 제목으로 사용된 연도 덕분에 이것은 또 어떤 시절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인가 하며 무심히 지나가 버렸었다.(처음 1Q84라는 제목을 보면서 69가 떠올랐던건 나뿐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은 쉽사리 읽을 엄두를 낼 만큼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책을 펼치는 것을 망설였던 것이었고 언제쯤 두꺼운 책을 마음 편하게 뒹굴며 읽을 수 있을까 아쉬워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왔고, 방학이 되었다.

일단 책을 펴자 두 권의 두툼한 책에 대한 선입견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었지만 하루키 소설은 역시 그만의 매력을 담고 있다.

그에게서는 어느정도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곤 했지만, 이 책에서는 종교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종교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는 설명을 친절히 했음에도 불구하고(예전같으면 그려려니 할 수 있었겠지만) 나이가 드니 조금은 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와 한 개의 달이 있는 세계.
그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달의 존재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평행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책 속에서 설정한 다른 두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쉬웠다.(어쨌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은 기독교적)

결국 혼란으로 끝나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무한 결론'이라는 식의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몇몇 사람들에게서 뭔가 이상하게 허무한 결말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뭐, 그것이 하루키식이 아닐까?)

이런 종류의 결말은 결국 '이것은 소설이야 그러니까 착각하지 말아.' 라고 하는 친절한 설명을 붙이는 듯한 것이라는 느낌은 노파심일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였다.

'상실되었습니다.' 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일본어 원문을 보지 못했는데, 원문 그대로 상실이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일까? 상실이라는 것은 삭제와도 소멸과도 다른 것이다. 굳이 상실으 의미를 찾아가자면 '잊었다' 정도의 의미를 실마리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그의 소설에서 존재의 확신은 '기억'을 통한 것이라는...

상실되었다는 것은 즉, 잊혀졌다는 것이고, 잊혀졌다는 것은 곧, 사라졌다는 것, 없어졌다는 것,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은 상실의 시대 이후 쭈욱 그에게 결여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보다.
그리고, 그가 강렬하게 원하고 집착하는 것은 결국 '기억'
기억을 부여잡고 사는 것, 그것을 갉아먹고, 그것에서 자양분을 얻는...
그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
항상 과거로만 달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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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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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무진에 대한 기억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무진은 비일상적이고 신비로운 곳.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리 나쁜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처음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주인공이 무진으로 들어가게 될 때, 나는 그저 무기력한 일상 속에 있는 한 소시민의 모습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아니, 정확히 맞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처음 몇 장을 읽다가 나는 불현듯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욕지기를 하며 책을 집어던져 버렸다.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뿐이었다. 주인공이 처음 학교에 들어서는 장면이었으니... 그리고 그 이후에 더욱 불쾌한 느낌을 받게 될 거라는 예감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불쾌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나는 한동안 이 책을 버려둔 채로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책장에서는 '도가니'라는 제목이 마치 펄펄 끓는 솥단지에서 부글부글 김을 피어올리듯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무언가가 자꾸만 나의 눈을 자극했다. 몇 달인가를 모르는척 지나치다가 결국 하는 수 없이 책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보아온 수많은 픽션들이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어 보여주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눈을 돌리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보여준다...

불편한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는 친절하지도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도록 의도되어 있다. 욕지기가 입안을 맴돌고 두 눈에 핏발이 서고, 가슴은 답답해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결국 나는 그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안도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도 결국은 마음 한구석에 가해자의 한숨을 가지고 있는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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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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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에 앞서 나는 세 가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중국 소설이라는 점.  

중국 소설은 언제나 삼국지와 서유기를 떠올렸고 말도 안되는 과장과 환상이 있는 오래된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국 소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라는 것인데, 가장 최근 소설이라고 하면 아큐정전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아, 김용의 수많은 무협소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아, 김용의 소설을 중국 소설이라고 해도 될까? 어쨌든, 중국 소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유는 분명히 정치적인 배경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제목이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는 점. 

말하자면 허삼관 매혈기가 갖는 뜻이 무엇인지 제목만 보고서는 언뜻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인데, 허삼관이 사람이름이었고, 매혈기가 피를 파는 이야기였다는 것은 책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한자로 팔 '매' 자가 제목 밑에 조그맣게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니!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편집자는 정보 전달에는 실패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뭔 소리인지 몰라 무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펴게 만들었으니... 설마, 진짜 의도한 것이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앞선 두 가지로 인한 것이었는데, 나는 이것이 어쩌면 중국 고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룬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펼치자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의외로 재.미.있.었.다.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p31)

초반의 대화 속에서 피를 파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이것이 노동과 관계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팔아 살아가는 담담한 이야기라는 것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무리 없는 추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역시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인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피'는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혈족을, 첫째 아이인 일락이에 대한 의심에서 '피'는 혈통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행위는 생명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족'으로 수렴된다.

하아. 

누구를 위해선지,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온통 피를 빨려 기력이 쇠한 요즘엔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걸치고 싶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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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 바스락 아기 헝겊책
애플비 편집부 지음 / 애플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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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바스락거리는 물건을 아가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것이다. 게다가 헝겊으로 되어 있으니, 물고, 빨고, 주무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아가를 위해 이만큼 적절한 것도 없을 테고...  크기도 아가에게 맞추어 초소형이니 돌 전의 아가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당하다. 장난감이면서 유아시절부터 책과 가까이 할 수 있으니, 유아 독서 교육을 위한 재료로 유용할 듯한데... 

 그러나, 역시 2%부족함이 있으니... 먼저, 바스락 거리는 부분이 겉표지 한장뿐이라는 점... 이건 정말 너무했다. 바스락거리는 재질이 비싸서 그런건지, 아니면 의도적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겉표지 한장만 바스락 거리는 것만 보고서는 왠지 속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 물론 유아가 글을 읽을 수 없으니 내용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곰 세마리와 나비야 노래 가사를 써 놓은 것은 뭘까? 아마도 엄마가 노래를 불러주라는 뜻이었겠지만...  

이건 뭐...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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