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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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에 앞서 나는 세 가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중국 소설이라는 점.  

중국 소설은 언제나 삼국지와 서유기를 떠올렸고 말도 안되는 과장과 환상이 있는 오래된 이야기들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중국 소설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라는 것인데, 가장 최근 소설이라고 하면 아큐정전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아, 김용의 수많은 무협소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다.(아, 김용의 소설을 중국 소설이라고 해도 될까? 어쨌든, 중국 소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유는 분명히 정치적인 배경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는 제목이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는 점. 

말하자면 허삼관 매혈기가 갖는 뜻이 무엇인지 제목만 보고서는 언뜻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인데, 허삼관이 사람이름이었고, 매혈기가 피를 파는 이야기였다는 것은 책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한자로 팔 '매' 자가 제목 밑에 조그맣게 적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니!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편집자는 정보 전달에는 실패했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서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뭔 소리인지 몰라 무얼까 하는 호기심에 책을 펴게 만들었으니... 설마, 진짜 의도한 것이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앞선 두 가지로 인한 것이었는데, 나는 이것이 어쩌면 중국 고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룬 것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펼치자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의외로 재.미.있.었.다.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p31)

초반의 대화 속에서 피를 파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이것이 노동과 관계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팔아 살아가는 담담한 이야기라는 것은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을 신성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무리 없는 추론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역시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인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피'는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결혼을 하는 것은 혈족을, 첫째 아이인 일락이에 대한 의심에서 '피'는 혈통을,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행위는 생명의 희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족'으로 수렴된다.

하아. 

누구를 위해선지, 누구에겐지도 모르게 온통 피를 빨려 기력이 쇠한 요즘엔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걸치고 싶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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