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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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읽어보는 하루키 소설이었다.

적어도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무언가 읽을 거리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하루키 소설을 추천해 주곤 했었는데, 어느결엔가 그의 소설에서 박자가 느려진 느낌이 늘었고 그 후론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밤의 거미원숭이가 소설이었던가?)

어쨌든,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 때 제목으로 사용된 연도 덕분에 이것은 또 어떤 시절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인가 하며 무심히 지나가 버렸었다.(처음 1Q84라는 제목을 보면서 69가 떠올랐던건 나뿐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은 쉽사리 읽을 엄두를 낼 만큼 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책을 펼치는 것을 망설였던 것이었고 언제쯤 두꺼운 책을 마음 편하게 뒹굴며 읽을 수 있을까 아쉬워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왔고, 방학이 되었다.

일단 책을 펴자 두 권의 두툼한 책에 대한 선입견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함몰되어 버렸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었지만 하루키 소설은 역시 그만의 매력을 담고 있다.

그에게서는 어느정도 환상적인 상상력을 보곤 했지만, 이 책에서는 종교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는 종교이지만 종교적이지 않다는 설명을 친절히 했음에도 불구하고(예전같으면 그려려니 할 수 있었겠지만) 나이가 드니 조금은 변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와 한 개의 달이 있는 세계.
그 두 세계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달의 존재만으로 느낄 수 있을 뿐.

평행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책 속에서 설정한 다른 두 세계에 대해서 이해하기는 쉬웠다.(어쨌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은 기독교적)

결국 혼란으로 끝나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무한 결론'이라는 식의 감상을 하게 되는 것이리라.(몇몇 사람들에게서 뭔가 이상하게 허무한 결말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뭐, 그것이 하루키식이 아닐까?)

이런 종류의 결말은 결국 '이것은 소설이야 그러니까 착각하지 말아.' 라고 하는 친절한 설명을 붙이는 듯한 것이라는 느낌은 노파심일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였다.

'상실되었습니다.' 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일본어 원문을 보지 못했는데, 원문 그대로 상실이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일까? 상실이라는 것은 삭제와도 소멸과도 다른 것이다. 굳이 상실으 의미를 찾아가자면 '잊었다' 정도의 의미를 실마리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결국 그의 소설에서 존재의 확신은 '기억'을 통한 것이라는...

상실되었다는 것은 즉, 잊혀졌다는 것이고, 잊혀졌다는 것은 곧, 사라졌다는 것, 없어졌다는 것,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은 상실의 시대 이후 쭈욱 그에게 결여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보다.
그리고, 그가 강렬하게 원하고 집착하는 것은 결국 '기억'
기억을 부여잡고 사는 것, 그것을 갉아먹고, 그것에서 자양분을 얻는...
그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
항상 과거로만 달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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