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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118쪽에서 고미숙은 자신과 다른 종류의 담론들을 함정으로 몰아넣은 뒤, 그걸 바탕으로 자신의 진리성을 증명하는 방식을, 근대적 사유가 자신을 정립하는 아주 어처구니없고도 일반적인 방식이라 말한다. 그러나 "인문학 산책"이라는 분류를 무색케 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인내심을 갖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독자라면 바로 그 방식이 고미숙의 책 전체에 일반화된 방식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꼼꼼한 각주가 학술서 같은 인상을 줄지 모르나, 문장을 읽다보면 이 책이 근대라는 한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몽매한 독서대중의 깊은 잠을 깨치고자 하는 계몽적 의도로 넘쳐난다는 것 또한 알아내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계몽적 의도, 고급지식담론에 대한 물타기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근대적 "배치"나 사유형태가 어떠한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으며 역사적으로 어떠한 우연적 계기들의 연속으로 발생했는가, 근대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현재 삶의 어떤 측면을 작동케 하는 원리인가에 대한 중요하다 싶은 질문은 좀처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저 몇 가지 발상의 전환만으로 탈근대라는 새로운 천년왕국이 도래할 수 있다는 순박한 기대와 오로지 담화적 차원에서만 세계의 변화를 다루는 지적 태만, 그리고 광범한 레퍼런스의 비유기적 결합, '차이를 포함하며' 발작적으로 반복되는 영탄구로 독자들을 오도하는 것이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다.